광산 지하 190m에 ‘사람이 있다’[기자메모]

김현수 기자 2022. 11. 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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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전국사회부 기자

‘여기 사람이 있다.’

지난 7월19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1독(Dock·선박 건조 공간)에서 들려온 절규다. 이곳에는 22년 경력의 조선소 용접 노동자 유최안씨가 스스로 만든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감옥에 갇혀 있었다. 무더운 여름에 그가 ‘옥쇄 파업’을 벌인 이유는 열악했던 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다. 약자인 그들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자, 국민적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이번 봉화 광산 매몰사고를 취재하면서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가 떠올랐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외친 ‘파업’과 노동자가 매몰된 ‘사고’는 엄연히 달랐지만 이들이 바랐던 모습이 비슷해서다.

봉화 광산 매몰사고는 기적의 드라마를 쓰기까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고는 지난달 27일 알려졌지만 이틀 뒤에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이 발생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았다. 화재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봉화 광산에 매몰된 노동자를 위한 발걸음은 없었다. 고립 노동자 동생이 당 민원실로 ‘도와달라’는 절박한 전화를 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는 글만 올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사고 발생 5일 만인 지난달 31일 오후 6시쯤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행사’에 참석한 직후다. 그러나 이 지사는 지난달 30일 베트남 현지에서 SNS를 통해 ‘이태원 인명사고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도민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봉화 지하 190m에서 사투를 벌이던 두 광부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처음으로 ‘높으신 분’을 본 가족들은 오열했다. 현장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구조상황을 살피던 60대 노동자의 아내는 이 지사의 바짓단을 잡고서는 “지하에 있는 남편을 살려달라”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노동자 가족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관심을 촉구했다.

‘(높으신 분)관심’의 힘은 대단했다. 그간 2대 밖에 지원이 안 됐던 시추기는 다음 날인 1일 3대가 추가로 지원됐다. 2일에는 무려 7대가 추가됐다. 사고 현장에는 시추기가 더 들어올 공간조차 없었다.

광산의 안전을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부의 수장은 사고가 난 지 7일째인 지난 2일 뒤늦게 현장을 찾아 민심을 수습했다.

두 광부는 지하 190m에서 서로의 어깨를 기대어 체온을 나누고 지하수를 마시며 지옥 같았던 221시간을 버텨내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영화에서, 혹은 사회에서 듣던 “돈 없고, 빽 없으면 맷집이라도 좋아야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봉화에서 바라본 노동자 가족들은 거제도에서처럼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불타는 망루 앞에서 발을 구르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울부짖은 용산참사의 한 임차인처럼 절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한 맺힌 소리가 열흘째 메아리치는 듯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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