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참사 났는데 5개 기동대 두 시간 '대기'...65개 부대는 '퇴근'

김성진 기자 2022. 11. 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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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집회 때문에 경력 배치 못해"...김광호 서울청장 "상황 심각성 인지 못해...경력 부족 아냐"

경찰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약 1시간 전쯤 서울시내 집회관리를 하던 65개 기동대를 퇴근 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야간 근무를 위해 거점대기 중이던 기동대도 집회 종료후 약 두시간 가량을 대기했다. 경찰기동대가 현장에 처음 투입된 것은 밤 11시40분쯤, 사고가 발생하고 1시간가량 흐른 뒤였다.

"당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7일 "집회 대비 때문에 경력이 부족해서 배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며 "현장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할 판단은 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7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경찰 '10월 29~30일 경찰 부대 운용' 자료를 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29일 밤 9시쯤 이태원 참사를 한시간가량 앞두고 야간 거점 근무가 예정된 기동대 5개 부대를 제외한 65개 부대를 해산했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도심 집회 등에 기동대 70개 부대, 의경 8개 부대를 투입했었다. 용산에는 55기동대, 경기남부청 산하 5기동대 등 9개 부대가 배치됐다가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시작해 용산으로 행진해 온 집회들이 있어서 배치 부대가 늘어났다.

서울경찰청은 해당 집회들이 끝나자 광화문 일대 야간 근무가 예정된 77기동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를 해산했다. 이미 저녁 6시34분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밤 9시10분까지 비슷한 신고가 8건 접수된 상황에 가까이 투입할 수 있는 기동대들을 해산한 셈이다.

해산된 기동대 경력은 4000여명으로 계산된다. 한 개 기동대는 통상 60~70명으로 구성된다.

용산과 남대문 집회 통제, 외교시설 경비를 위해 투입됐던 의경 8개 부대도 전부 저녁 6시~9시 사이 복귀 지시를 받았다. 의경들은 저녁 6시5분~밤 10시 사이 서울 각지 숙소로 복귀했다.

지난달 29일 경찰 기동대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1시간가량 흐른 밤 11시5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참사 이튿날 새벽 기동대 대원들이 구급차가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할 수 있도록 현장 통제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태원 현장 경찰관들은 당시 인파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용산경찰서 경찰관은 참사 1시간 전쯤 경찰서 교통 담당자에게 "교통기동대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기동대가 처음 투입된 건 밤 11시40분이었다. 11기동대는 당일 용산 일대 집회에 투입됐다가 사고 1시간 35분 전인 밤 8시40분쯤 본래 예정돼있던 용산 일대 야간 거점 근무에 투입됐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밤 11시5분쯤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고 12분 뒤 11기동대에 투입 지시를 내렸다.

용산경찰서는 서울경찰청에 경력 추가 배치를 요청했다. 밤 11시33분쯤 77기동대(종로거점), 50분쯤 67기동대(여의도), 51분쯤 32기동대(서초)가 각각 투입됐다. 이튿날 오전에는 1시14분쯤 외교 시설에서 야간 거점 근무를 서던 51기동대가 이태원에 투입됐다. 부대들은 밤 11시50분~이튿날 오전 1시33분 사이 이태원에 도착했다. 약 300~350명의 기동대가 투입된 것이다.

숙소에 복귀했던 의경 8개 중대도 이튿날 오전 0시11분쯤 투입됐다. 의경중대는 이튿날 오전 0시54분~1시12분 사이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차 우회를 시도한 녹사평역과 차에서 내린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 압사 사고가 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 녹사평역과 이태원역은 약 700m 거리라 도보로 10여분 걸리는데 이 전 서장은 차로 우회했고 결국 이태원 참사 현장에 밤 11시5분쯤 도착했다./사진=네이버 지도 화면 캡쳐


현장 경찰관이 인파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경력 요청을 했는데도 지휘부에 전달되지 않고 결국 기동대가 해산된 것은 '보고 체계' 실패로 해석된다.

기동대는 기본적으로 서울경찰청이 운영한다. 비록 집회에 투입했지만 정식 요청이 있었다면 일부 기동대가 이태원으로 이동됐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경찰청 기동대 담당자는 "기동대 첫 투입 전까지 기동대를 요청하는 메시지, 전화 등 정식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교통기동대를 보내달라'던 현장 경찰관의 요청은 용산경찰서 내에서 묵살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교통 담당자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교통기동대는 지원이 어렵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밝혔다. 자치경찰위원회도 기동대 파견을 요청할 수 있지만 자치경찰위원회도 제역할을 다하지 않닸다.

지휘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였다. 이 전 용산경찰서장이 이태원에 일찍 도착했다면 11기동대 투입도 앞당겨졌을 수 있다. 이 전 서장은 도심 집회 통제 후 식사를 했고 밤 9시57분~10시쯤 녹사평역 부근에서 교통정체에 막혀 이태원으로 접근을 못했다. 700m 거리로 걸어서 10여분 거리지만 이 전 서장은 차로 우회를 시도하다가 밤 11시5분쯤에야 이태원에 도착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참사 당일 진보·보수 도심 집회 때문에 동원할 경력이 없었던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서면으로 "집회 대비 때문에 경력이 부족해서 배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112 신고 접수 이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즉각적으로 조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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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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