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광산' 극적 구조된 박정하 반장 "세상 처음 느껴본 느낌"
기사내용 요약
"부모 품서 살다가 혼자 살아도 되는 느낌"
"수직갱에 2시간 동안 토사 등 쏟아져내려"
"탈출 위해 3일간 갱도 10m 파내다가 중단"
비닐로 바람막고 모닥불 피워 추위 막아
커피믹스 탄 뒤 "오늘 우리 저녁밥이니 먹자"
탈북자 젊은 친구가 "형님"하고 뛰어와 구조실감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다시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느껴봤다고 해야 하나요. 부모 품에서 살다가 이제 나 혼자 살아도 되는 느낌이랄까요."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사고에서 221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작업반장 박정하(62)씨는 갇혔던 갱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아직은 꿈만 같다.
그는 전화 통화를 통해 사고 당시의 모습과 이후 10일간을 버틸 수 있었던 과정 등을 공개했다.
그날 박 반장의 근무시간은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였다.
오후 4시께 작업장에 도착해 광석을 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중에 담당 보안관이 막장을 순회하러 왔다. 안전하게 작업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보안관이 되돌아가고 난 뒤 "같이 올라갑시다'라는 소리가 났다.
"담당 보안관이 탄 케이지(엘리베이터)가 가고 난 뒤 5분도 채 안돼 벼락치는 소리가 나면서 '우르르 꽝꽝' 쏟아지고 붕괴가 되는 거에요. 케이지가 다니는 동맥인 수갱 케이지 쪽으로 쏟아졌어요. 우리는 붕괴지점에서 50m 떨어진 거리에 있었어요."
파이프와 나무, H빔, 토사 등이 2시간 정도 쏟아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38분이었다.
"구멍이 막혀버리니까 완전히 밖으로 나갈 길이 없어진 거죠. 누가 위에서 뚫어주기 전까지는. 그 때부터 굶는 것이 시작된 거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거고,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하잖아요."
그 때 옛날에 갱도에서 덤프트럭들이 탄을 실어내며 사용했다고 들었던 램프웨이가 떠올라 그 곳을 찾아나섰다.
"우리가 있던데서 쏟아졌던 수갱 길을 통해 20m 정도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수평갱도를 쭉 들어가야 램프웨이를 만나요."
덤프트럭이 다녔던 흔적이 있었기에 밖으로 드나드는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희망 속에 괭이 2개로 막힌 부분을 3일간 팠다. 이렇게 10m를 파들어 갔는데 그 뒤로도 다 막혀 있음을 알고 희망이 없어졌다. 일단 포기하고 철수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때였다.
"있다보니 바로 발파소리가 나는 게에요. 월요일(10월 31일)부터 (위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발파소리가 약하게 나더라구요. 등을 켜고 흔들어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기도 했는데 위에서는 못듣는 것 같았어요. 아무 응답이 없어. 화약이 좀 더 있었으면 내가 거기서 발파를 시도해 볼 수 있었는데 가진게 없었어요."
박 반장은 갱도에 있던 화약은 다 써버린 상태였다.
"막힌 것 뚫으려고 10개씩 2번 내가 발파했거든. 근데 양이 너무 적어서 화약을 집어넣은 구멍만 그냥 '퍽'하고 터지더라고. 그런데 발파소리가 들려서 희망이 다시 들었어요."
박 반장이 다른 갱도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 작업장으로 간 것은 사고발생 4일전이다.
그는 나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사고 이틀전 20짝 정도를 그 곳으로 운반해 놓았었다. 작업 중 지주 시공에 필요한 산소절단기와 LPG통 등의 장비도 옮겨놓았다. 갱 내는 물이 떨어지는 곳이 많다. 작업할 때는 물도 맞고 땀고 나서 옷이 젖는다. 작업자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젖은 옷을 말리곤 한다. 회사에 요청해 전기난로를 가져다 놓았다. 떨어지는 물을 막기 위해서 비닐을 가져다 'ㄱ' 모양의 임시천막도 쳤다. 그러다가 매몰사고가 났다.
이 때부터 광부생활 25년의 베테랑 박 반장의 위기대처 능력이 발휘된다. 갱 내 온도는 14도를 유지하고 있다.
"안쪽에 버려진 비닐을 가져다 바람막이로 썼어요. 불을 안피웠으면 밤에 추워서 못견뎠어요. 방에 있던 전기포트를 사용하려가 가져다 놓았었는데 전기가 나가니 사용하지 못하잖아요. 플라스틱 부분은 다 떼어내고 스텐레스 금속부분에다 물을 조금 부어서 모닥불로 끓여서 믹스커피를 마셨어요."
회사는 작업자들이 쉴 때 먹을 수 있도록 믹스커피를 지급해 준다. 한 박스를 통채로 들고 가자니 남들 눈치가 보여 손을 넣어서 푹푹 뽑아 비닐에 넣어서 가져간게 낱개 30개 정도였다. 먹을 건 그 것 밖에 없었다.
"첫날에는 빨리 끝날 줄 알고 한 번에 2개를 종이컵 하나에 타먹었어요. 동료에게 '오늘 우리 저녁밥이니까 저녁밥 먹자'고 했어요."
구조 직전의 상황도 상세하게 들려줬다. 구조대가 들어올 때서야 살았다 싶었다.
"서로 서로 주저앉았어요. (처음 갱도에 진입한 구조대원) 그 친구가 젊은 친구입니다. 북한에서 탈북해서 열심히 사는 앤데 '형님' 하면서 뛰어오더라구요.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어요. 그 자리에서 물에 털석 주저앉아서. 얼마나 반가워요. 이거는 완전히 꺼져가는 촛불이 한 번에 다시 확 살아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때는 안전등도 거의 소진돼 끝나는 판이었다. 모든게 다 떨어졌다. 가져다 놓은 나무도 몇토막 남지 않았다. 사용했던 산소용접기용 LPG는 진작 소진돼 없었다. 라이터의 가스도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아껴썼던 모든 것들이 소진되던 순간이었다.
구조된지 사흘째이지만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제 옆에서 아내가 저를 지켜주고 있는데 시끄러운가 봐요. 악몽인가 봐요. 저 혼자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동료)도 그런대요. 나만 겪는 것이 아닌가 봐요."
박 반장과 동료의 건강은 빠르게 회복 중이다. 병원측은 전날 점심식사부터 죽(미음) 대신 밥을 제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h932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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