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첫 핵심설비 국산화 원전 ‘신한울 1·2호기’ 가보니…“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응할 것”
신한울 2호기 운영 허가 절차 착수
안전성 논란 수소 제거장치 확인
“안전 우려 과장된 점도 있어“
”수소도 엄격히 관리할 것”
“신한울 2호기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안전사고에 이중삼중으로 대비해서 안전에 자신 있습니다. 곧 운영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에 들어갑니다.”
이달 3일 경북 울진 신한울 1·2호기 원전을 방문한 기자들에게 권맹섭 한국수력원자력 신한울 1호기 발전소장이 한 말이다. 권 소장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2월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한울 2호기에 대한 운영 허가를 심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은 처음으로 신한울 1호기와 2호기를 공개했다. 신한울 원전은 지난 2013년 건설 공사가 처음 시작된 이후 9년간 민간에는 단 한 번도 내부 시설이 공개된 적 없다. 원전은 보안 강도가 매우 높은 시설이기 때문에 원자력 관련 부처 공무원들도 들어가기 어렵다. 외부인이 방문 가능한 기간은 원전 건설을 비롯해 각종 안전 검사와 내부 점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나 가능하다.
원안위로부터 운영 허가를 받고 원자로에 핵연료가 투입되는 순간부터 내부 시설을 직접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신한울 1호기는 지난해 7월 조건부 운영허가를 받고 현재 원자로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이날 현장 방문에서도 신한울 1호기는 일부 시설을 창문 너머로 보는 것만 가능했다.
◇SF영화 속 우주선 조종석 닮은 ‘원전의 두뇌’
한수원은 이날 ‘원전의 두뇌’라고 불리는 디지털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을 공개했다. 신한울 1호기 4층에 설치된 MMIS는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낸 설비다. 원래는 해외에 전량 의존하던 장비인데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개발이 진행됐고 2009년 신한울 1·2호기에 설치가 확정됐다.
MMIS는 설비 형태부터 설치된 공간까지 흡사 군 작전 통제실을 떠올리게 했다. 바닥과 벽면, 천장 모두 밝은 회색으로 칠한 공간 맨 벽면엔 크고 작은 모니터들이 설치된 대형정보표시반이 있어 발전소 각종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직원 6명은 원자로와 터빈을 비롯한 각종 전력설비를 제어하는 ‘운전원제어반’에 앉아 벽면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원전 가동 상황을 확인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MMIS를 제어하는 조직은 총 6개 조로 구성된다. 이 중 3개 조가 하루 8시간씩 근무하며 원전 가동 상황을 24시간 내내 확인한다.
한쪽에 있는 ‘안전제어반’과 ‘다양성제어계통’은 SF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우주선 조종석 같은 모습이다. 손으로 당기는 레버와 그 옆에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버튼이 계속 깜빡였다.
안전제어반은 원전 핵심 시설을 제어하는 운전원제어 장치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만든 장치다. 원전 내 각종 시설과 유선으로 연결돼 있어 원전을 제어할 수 있다. 다양성제어계통은 운전원제어반에 이어 안전제어반까지 고장난 상황에서도 원전을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설비다. 혹시 모를 연속적인 사고에 대비해 이중삼중 대비책을 마련한 셈이다.
다양성제어계통마저 고장날 경우 3층에 있는 ‘원격정지실’에서 원전을 통제할 수 있다. 원전 현장에 있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관계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이후 원전 안전설비의 핵심 키워드는 ‘상상력’으로 바뀌었다”며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고에 최대한으로 대비하자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KINS는 설계상 일어날 수 없고 상상으로만 가능한 사고에 ‘가상사고’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비한 매뉴얼까지 신한울 원전 설비 곳곳에 적용하고 있다.
◇ 신한울 2호기 안에서 직접 본 ‘원전의 심장’
원전은 물을 데워서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핵분열은 냉각수 온도를 320도까지 끌어올리고 원자로에 연결된 가압기가 150기압을 가한 다음 증기발생기를 통해 증기를 생산한다. 이 증기가 터빈을 돌리면서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다.
이때 만들어진 전기 전압은 24킬로볼트(㎸)다.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주 변압기에서 765㎸로 전압을 올린 뒤 신한울 원전에서 직선 거리로 약 35㎞ 떨어진 신태백 변전소를 거쳐 전국으로 송전된다.
신한울 2호기에는 또다른 국산화 설비인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가 들어간다. 아직 가동 전이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RCP는 핵분열을 거듭하며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냉각재를 강제로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원전의 혈액에 해당하는 냉각재를 펌프로 순환시키는 의미에서 ‘원전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한울 원전의 경우 원전 부지 앞의 동해 바다에서 바닷물을 끌어다 냉각수로 쓰고 있다.
RCP는 지진으로 원전이 흔들리거나 원전 설비에 불이 붙어 화재 경보가 켜지면 자동으로 정지된다. RCP는 모터를 사용하므로 원자로 안에서 유일하게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장치다. 때문에 비상시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는 빨간색 호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설비 결함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 등으로 RCP가 멈추면 원자로까지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돼 있다.
◇ PAR 외형은 예상보다 소박해
원전 내 수소 농도를 낮추는 장치인 피동촉매형수소재결합기(PAR)는 이날 현장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PAR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도입된 장치로 신한울 1·2호기에 각각 30대씩 총 60대가 설치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주요 설비가 쓰나미로 물에 잠기며 정전이 일어나면서 RCP 작동이 멈췄다. 원자로로 냉각수가 유입되지 않아 원자로에 있던 연료봉이 1200도까지 올라가면서 녹아내렸고 뜨거운 열에 냉각수가 분해되면서 원전 내부에 수소가 계속 차올랐다. 결국 이 수소가 폭발하면서 방사능 유출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신한울 2호기에서 본 PAR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장비 치고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얇고 길쭉한 모양에 상단에는 사각형 구멍이 뚫려있는 데다가 재질은 은색 스테인리스였던 탓에 얼핏 보면 환풍구처럼 보였다.
KINS 관계자는 “작동 원리가 쉽기 때문에 형태도 간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PAR에는 알루미늄이나 백금으로 코팅된 벽돌 모양의 세라믹 케이스가 설치된다. 알루미늄과 백금은 촉매체로 수소가 이와 닿으면 물로 바뀌고 수소는 사라진다. 이런 방식으로 원전 내부 수소 농도가 일정 수준보다 높게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 “불꽃 튀는 현상은 수소가 제거되고 있다는 뜻”
최근 PAR는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현재 시험 운전 중인 신한울 1호기에 설치된 수소 농도를 제대로 낮추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원전 내부 수소 농도가 6%인 상태에서 PAR 주변에 계속해서 불꽃이 튀는 현상도 확인됐다.
KINS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문제 제기가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소 농도가 4% 이상일 때 수소가 자연발화할 수 있다”며 “수소 농도가 10% 미만인 환경에서 수소에 불이 붙으면 폭발하는 게 아니라 불에 타서 없어져버린다”고 말했다.
PAR 주변에 계속 불이 붙는 건 폭발 전조현상이 아니라 수소 농도가 낮아지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12년 미국 비영리단체인 천연자원방어위원회(NRDC)는 미국 뉴욕주 허드슨강 주변에 설치된 원전 인디언포인트 2호기에서 PAR를 철거하라고 요구구했다. PAR가 작동하면 수소가 타면서 원전 내부에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당시 이 요청을 거절했다. PAR 작동으로 수소에 불이 붙는 게 오히려 수소 농도를 낮춰 수소의 폭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KINS에 따르면 원전 내부 수소 농도가 10%를 넘지 않는 한 수소 폭발 가능성은 매우 낮다.
KINS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원전 내부에 설치된 PAR 성능이 25% 떨어진 상태에서도 수소 농도가 안전한 수준을 유지하는지 여부를 시험하고 있다.
신한울 2호기는 지난해 8월 완공된 후 1년여 가까이 안전성 검사를 받고 있다. 한수원이 원안위에 운영 허가 신청을 넣으면 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이 원전 안전성, 운영 필요성을 점검한다. 원전 가동의 필요성과 안전성이 확인되면 원안위가 최종 심의해 운영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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