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황당한 ‘매출 1500억’ 잣대

박민철 기자 2022. 11. 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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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기존 예측을 뛰어넘어 급등하면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1500억 원대를 넘어섰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중소기업을 졸업하게 됐습니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재 납품대금 연동제는 법적으로 미비한 상황으로 올해 영업 순익은 최악"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매출이 늘어났다고 중견기업으로 편입될 경우 정부의 각종 규제에 묶이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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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철 산업부 차장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기존 예측을 뛰어넘어 급등하면서 원하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1500억 원대를 넘어섰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중소기업을 졸업하게 됐습니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재 납품대금 연동제는 법적으로 미비한 상황으로 올해 영업 순익은 최악”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매출이 늘어났다고 중견기업으로 편입될 경우 정부의 각종 규제에 묶이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제조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원자재를 수입해 재가공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익 구조인데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후폭풍으로 갑자기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소기업을 매출 1500억 원 이하로, 단일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중견기업을 대거 늘려 ‘성장사다리’를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급변하는 디지털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낡은 잣대다. 정부가 만든 매출액 기준 칸막이 규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은 정부의 세제 혜택, 정책자금, 정부 조달, 연구·개발(R&D) 등 119개에 달하는 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으로 전환될 경우, 정부 지원 산업 중 약 98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공공조달 시장 참여 기회가 박탈되고 투자세액 공제율은 10%에서 3%로 3분의 1로 떨어진다. R&D 세액 공제율도 25%에서 최저 8%로 줄어든다. 기업들이 오히려 성장하려 하지 않는 현상,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은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가 낳은 산물이다. 심지어 중소기업으로 남기 위해 기업을 쪼개는 등 각종 편법이 동원되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이 지난 5년간 271개다. 중견기업 실태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중견기업 응답 비율이 2018년 5.1%에서 2020년 6.6%로 1.5%포인트 늘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하는 성장 걸림돌 규제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기업인들 사이에 “중소기업은 ‘보호’, 중견기업은 ‘지원 배제’, 대기업은 ‘규제 대상’”이라는 말이 떠도는 실정이다. 정부의 전근대적인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낸 표현이다. 피터팬 증후군은 국가의 한정된 자원과 행정력의 효율적인 투입을 저해하고 기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영 중기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피터팬 증후군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열고 대기업으로까지 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정부는 중소기업의 성장판을 키우는 규제 완화 작업을 국정 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일단 중견기업 진입 유예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법령 개정을 논의 중으로, 관련 시행령을 내년 초에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의 성장 본능을 되찾기 위해 이제야말로 정부는 중견기업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재정비하거나 철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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