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라'가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였다니('싱포골드')
[엔터미디어=정덕현] "그곳 무지개 속 물방울들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SBS 예능 <싱포골드>에서 부산의 육아맘 합창단 조아콰이어가 무대를 천천히 걸어 나오며 부르는 그 첫 소절에서부터 가슴은 무너졌다. 그건 아마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들려오는 천사들의 목소리 같은 합창 소리에 그 무대를 보게 된 시청자들 대부분이 느꼈을 감정이다. 시인과 촌장이 1988년에 낸 명반 '숲'에 수록된 곡 '좋은 나라'. 이 곡이 이토록 아름답고 슬픈 노래였었나 싶은 감정.
당시에는 1987년 6.10 민주화 운동의 뜨거움이 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 제전으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나라' 즉 국가는 당시에도 화두였다. 과연 우리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좋은 나라'를 꿈꾸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인과 촌장이 꾹꾹 눌러쓴 '좋은 나라'라는 곡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거기 담겨진 역설적 현실이 드러난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즉 이 가사들은 모두 가정문이다. '만난다면', '그럴 수 있다면', '만날 수 있다면' 같은 가정을 담고 있는 것.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만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말한다.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지만 거기에는 결코 '좋지 못한 나라'에 대한 준엄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면 '좋은 나라'는 '그 푸른 동산'으로 표현되면서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처럼 그려진다. 무언가가 이들을 헤어지게 했고 그래서 눈물 흘리고 아픈 나날들을 겪지만 언제가 저 세상 푸른 동산에서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아프던 나날들을 까맣게 잊고 싶다는 소망이 거기 담겼다.
<싱포골드>에서 조아콰이어가 '좋은 나라'를 부르게 된 건 이태원 참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게다. 그건 참사 이전에 섰던 무대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시인과 촌장이 이 노래를 미래에 벌어질 어떤 비극을 위해 쓰지 않았어도 지금 현재 우리가 그 가사를 새삼 곱씹게 되는 것처럼 좋은 곡은 애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듣는 이들에 의해 계속 재해석되고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좋은 곡은 저마다의 기억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곡을 듣고 박진영은 심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치매 말기이신 아버님 생각을 내내 하게 돼서란다. 치매이신데 코로나19로 인해 찾아가지도 못하게 됐다는 것. 그런데 찾아가도 못 알아보시는 아버님이 너무 힘들어 이 코로나 상황을 오히려 자신이 기뻐하는 것 같다는 자책의 말도 내놨다. 그에게 좋은 나라는 아버님의 평화가 아닐까.
결국 눈물을 흘린 한가인은 조아콰이어가 성악을 전공했지만 누군가의 엄마들로 구성된 이른바 '육아맘 합창단'이라는 사실에 더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나온 엄마들을 보며 "여신 콘셉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천사 콘셉트"였다고 했다. "자신을 어루만져 주러 온 것 같았다"고 했다. 한가인은 조아콰이어가 처음 무대를 선보였을 때도 그들이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달고 노래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린 바 있었다. 그에게 좋은 나라는 엄마들이라도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세상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어떨까. 이번 비극을 마주하며 '나라가 없다'는 참담함을 느끼며 '좋은 나라'의 가사가 더 절절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만약에 우리나라, 우리 사는 세상이 완벽해서 이거보다 더 좋은 나라를 꿈꿀 필요가 없다면 이 노래가 안 와 닿았을 거예요. 근데 다 아프거든요 지금. 지금 사는 사람이 다 아프고, 특히 40살 넘어가면서부터는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의 비율이 더 많아지고. 다들 2,30대 분들이 주축이 아니다 보니까 이 말들이 모든 분들의 마음 안에서 살아서 나오는 것 같았고..."
박진영이 심사평을 가름해 건넨 이 말은 이 무대에 대한 감회를 담은 일반적인 소감이었지만 그것마저 이 시국에는 다른 의미로 들린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 의미들이 이어지고 새로워지며 우리의 가슴을 여전히 울리는 힘. 그 음악이 주는 힘이 여실히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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