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협상 30년…지구를 위한 ‘도원결의’는 어디로 갔나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를 해결하려고 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보다는 자국의 경제를 우선한 나라들은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불과 30년만에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60ppm 상승했다. 올해 목도했던 파키스탄의 홍수와 유럽의 폭염 그리고 한국의 집중호우를 우리는 더 자주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맺은 유엔기후변화협약부터 2022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까지 ‘기후협상, 30년 역사’를 정리한다.
1992년 이산화탄소 농도 355.9ppm_지구 정상들아, 모여라!
19세기 280∼290ppm대였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1990년대 초반 20%가량 올랐다.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름부터 멋지지 않은가? 지구를 지키는 용사처럼 세계의 각국 정상이 환경을 위해 모였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라는 이름의 이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지구 환경 문제를 협의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나온 것도 이때다.
시작은 멋졌다. 이때 이 회의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됐다. 이 협약 2조에서 ‘인간이 기후체계에 위험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준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하자’고 각국 정상이 서명했다. 환경을 위해 각국 정상이 모여 회의를 한 것도 훌륭했지만, 당시만 해도 기후변화가 없다는 회의론이 꽤 인기를 끌던 시점이어서 꽤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1995년 360.23ppm_교토에서 도원결의가 맺어지다
그리고 3년 뒤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에서 최초로 당사국 간의 구속력 있는 협정이 맺어졌다. 아마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교토 의정서’다.
당사국총회란? 기후변화협약(UNFCCC)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예요. 각국 정상을 포함한 대표단이 모여 기후변화 대응책을 협상하는 자리예요. 영어로 Conference of Parties인데, 줄여서 캅(COP)이라고도 부르죠. 뒤에 숫자를 붙여서 몇 번째 회의인지 구분하죠. 올해는 제27차 당사국총회로 캅27입니다.
교토의정서는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2008~2012년 기간 동안 감축하도록 규정했다. 모든 협약국이 지켜야 하는 건 아니었다. 부속서1(Annex 1)에 속한 국가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다
부속서1에 속한 국가는 대개 선진국이었다. 당연했다.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슬 배출해 지구를 이 지경으로 만든 나라들이 그네들이니까. 대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었지만, 폴란드 같은 동유럽 같은 국가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 나라들은 향후 탄소배출권을 팔 목적으로 가입했다.
어쨌든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의 지구를 위한 ‘도원결의’라고 할 만했다. 실제로 인류는 몬트리올의정서를 통해 남극의 오존층을 구멍 낸 염화불화탄소(CFC)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토의정서는 멋지게 실패하고 말았다.
기후협상 대표장면 ① 원칙 없는 합의, 구멍난 합의서(1997년 교토 COP3) 교토의정서는 멋지게 실패하고 말았다. 2005년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도 전인 2005년 미국은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2011년에는 캐나다가, 2012년에는 일본, 러시아가 탈퇴했다. (기사 읽기)
기후정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세계가 서로 협력하여 선택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지만,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기 바빴으며, 개도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세계는 다시 실효성 있는 기후협정의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선진국-개도국 간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는 지구를 위한 협력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기후변화 잡는 게, 오존층 구멍 막는 것만큼 쉽다면…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치, 즉 기후정치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풍력∙태양열로의 ‘에너지 전환’도, 기후위기 시대 각종 기술적 표준의 제정도 선진국의 경제적 목적이 숨어있다.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가장 인기 높은 해설서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의 곽재식 소설가가 특별기고를 보냈다. (특별기고 읽기-막연한 기후종말론을 넘어 ‘앤두루의 박사님’ 같은 사회가 필요해)
다시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2009년 기후대응에 친화적인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에 들어서면서, 중국을 포함한 주요 개도국들도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스트 교토 체제’의 출발점은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총회(COP15)로 모이고 있었다.
2009년 386.42ppm_코펜하겐에 모인 5만의 열망
덴마크 코펜하겐에 5만명이 운집했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높은 관심이 쏠렸다.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 28개국 정상이 ‘코펜하겐 합의문’ 초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중견 개도국들이 반발하면서 총회는 일순 파국에 휩싸였다. 결국 코펜하겐 합의는 유엔 공식문서로 채택되지 못하고 참고문서로만 남았다.
기후협상 대표장면 ② 코펜하겐은 왜 실패했나?(2009년 코펜하겐 COP15) 코펜하겐 합의는 구속력 있는 합의가 아니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개도국에 지원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도국은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기사 읽기)
포스트 교토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꿈은 표류하고 있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을 향해 고장 난 브레이크가 달린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과거 과학자들이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가 닥칠 거라고 경고했던 수치다.
세계는 다시 새로운 기후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합의의 종착점을 2015년으로 잡았다.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9차 당사국총회에서 각 나라는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각 나라가 2020년 이후의 ‘국가별 기여 방안’(INDCs∙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을 자체적으로 결정해 2015년 회의 전까지 제출하기로 했다.
기후협상 대표장면 ③ 슈퍼태풍에 초토화된 필리핀 대표의 눈물(2013년 바르샤바 COP19) 회의 개막 사흘 전 슈퍼태풍이 몰아닥친 필리핀은 사망·실종자만 7천명이 넘는 참혹한 피해를 봤다. 필리핀 대표는 말했다. “이 시간 나는 친척의 생사도 몰라 가슴 졸이고 있습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대신해 말합니다. 우리는 과감한 조치를 약속해야 슈퍼태풍이 일상이 되는 미래를 막을 수 있습니다.” (기사 읽기)
2015년 399.58ppm_파리에서 1.5도를 약속하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에서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의 근간이 될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듣는 ‘인류가 멸종 위기에 놓이지 않으려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묶어 둬야 한다’는 목표치 ‘1.5도’가 여기서 나왔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든 합의를 만들기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은 타협했다. 회원국 모두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5년 단위로 제출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는 5년마다 이행 점검을 시행해 점차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기후협상 대표장면 ④ 지구 위기 구할 신기후체제 (2015년 파리 COP21)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후정책은 파리협정을 근간으로 한다. 이란, 튀르키에 등 7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가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은 협정에서 탈퇴했지만, 바이든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바로 복귀했다. (기사 읽기)
파리협정의 한계는 명백하다. ‘스스로 숙제를 내서 유엔에서 검사받는’ 것인데, 이 숙제를 안 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명시적 조항을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러 쉬운 숙제를 내는 나라, 숙제 안 하고 버틸 생각하는 나라들이 나올 조짐을 보인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는 파리협약의 지구적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라고 각국에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개도국의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기후협상 대표장면 ⑤ 15살 툰베리, 협상장을 움직이다 (2018년 카토비체 COP24) 매주 금요일 스웨덴 의회 앞에서 등교거부 시위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 청소년 크레타 툰베리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24차 당사국총회에 초청받는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기사 읽기)
2022년 417.93ppm_이대로라면 2.5도 오른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파리협정이 제시한 산업화 대비 지구기온 상승 1.5도 목표치’와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에 따른 지구기온 상승 예상치’의 격차(gap)를 산정하는 ‘배출량 격차 보고서’를 매년 낸다.
유엔환경계획은 지난 26일 낸 ‘2022년 보고서’에서 현재 세계 각국이 다짐한 기후변화 대응 수준대로라면, 세기말까지 섭씨 2.4∼2.6도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보다 적극적인 감축 행동으로 1도를 더 낮춰야 하는 셈이다.
6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개막한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의 핵심 주제는 ‘손실과 보상’(loss and damage)이다. 기후변화 피해를 가장 크게 받는 개도국의 손실을 선진국이 얼마나 많이 보상해주느냐를 두고 여전히 선진국과 개도국은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끝난다. 그래야 모두가 협력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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