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투여, 뇌 신호 실시간 측정...'브레인칩'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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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
뇌공학연구실을 이끄는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쥐가 쓰고 있는 모자는 바로 '브레인칩'"이라며 "브레인칩으로 뇌에 약물을 투여해 행동을 제어하고 뇌 신호까지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브레인칩들은 칩을 통해 치료 약물을 주입한 후 순차적으로 뇌 신호를 관찰해왔다.
그는 "브레인칩 기술 발전과 함께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며 "뇌 신호도 의료 정보 중 하나로 취급돼 보안을 굉장히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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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 지난달 말 방문한 이곳은 고려대 의료원이 바이오메디컬 연구를 위해 마련한 곳이다. 한 실험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인 케이지 속 실험 쥐 한 마리가 분주히 먹이를 먹고 있었다. 실험 쥐는 ‘모자’처럼 생긴 장비를 쓰고 있다. 연구원이 노트북을 조작하자 실험 쥐는 먹이 먹는 행위를 멈췄다. 케이지 옆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서는 실험 쥐의 뇌 신호가 변했다는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뇌공학연구실을 이끄는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쥐가 쓰고 있는 모자는 바로 ‘브레인칩’”이라며 “브레인칩으로 뇌에 약물을 투여해 행동을 제어하고 뇌 신호까지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브레인칩들은 칩을 통해 치료 약물을 주입한 후 순차적으로 뇌 신호를 관찰해왔다. 실시간 뇌 신호 관찰이 힘들어 약물을 정밀하게 조절하거나 행동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 교수가 개발한 칩은 약물 투여와 뇌 신호 측정이 동시에 가능하다. 미세 유체채널과 정밀한 투여량 조절이 가능한 초소형 펌프가 달려있다. 칩 안에는 뇌 신호 측정용 전극도 집적돼 있어 약물에 반응하는 뇌 신호에 대한 정밀 측정이 가능하다. 무게도 약 4.6g으로 매우 가볍다. 실험실에서 본 쥐 역시 마치 모자를 쓴 듯 자유롭게 케이지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브레인칩은 뇌 신호를 읽거나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뇌 표면에 부착하거나 뇌 속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 전기적 자극을 가하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1870년대 처음 밝힌 이후 1950년대부터 구체적 연결고리를 찾는 기초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축적된 기초연구를 토대로 브레인칩을 만들고 간질이나 우울증과 같은 뇌 질환 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브레인칩 관련 기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뉴럴링크가 대표적이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돼지와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마쳤으며 인간 대상 실험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내에서는 우울증 전자약 기업 와이브레인 등이 있다.
조 교수는 “업계에서 브레인칩의 산업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브레인칩 시장은 2020년 46억 달러(약 6조 5228억 원)로 2028년까지 연평균 9.1%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분석된다. 조 교수 역시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들을 기업에 이전하는 형태로 사업화를 추진한다.
다만 아직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들이 남아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현재 브레인칩 기술 수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 뇌 신호는 약 2만개 정도다. 약 800억개에 달하는 뇌 신호 종류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뇌에 상처를 내지 않는 '비침습성' 확보도 관건이다. 조 교수는 "중증 질환 외 두통과 같은 일반적 병에도 쓰이기 위해선 뇌에 상처를 내지 않고 브레인칩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게 조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브레인칩 기술 발전과 함께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며 “뇌 신호도 의료 정보 중 하나로 취급돼 보안을 굉장히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려들 때문에 너무 앞서 규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고민을 통해 해결책을 함께 고안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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