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탄소저장고 '이탄지'…기후변화로 몸살
지난 7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30여 곳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 매장지를 경매로 내놨다. 이 결정에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그린피스 측은 "이 지역에서 석유 탐사가 이뤄지면 전세계 기후재앙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논란을 낳은 이유는 콩고민주공화국이 경매로 내놓은 지역에 탄소 저장고로 불리는 '이탄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탄지는 식물의 잔해가 물이 고인 상태에서 잘 분해되지 못하고 수천 년에 걸쳐 퇴적돼 만들어진 토지를 의미한다. 이탄지는 일반 토양보다 탄소를 10배 이상 저장할 수 있어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이탄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지구온난화로 이탄지에 저장된 탄소가 다량 배출되고 있다는 분석결과가 나오며 탄소 저장고로서의 이탄지 역할이 무색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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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면 3% 차지하는 이탄지, 토양탄소 44% 저장
식물 잔해나 식물체가 지하에 매몰되지 않고 배수와 통기가 불량한 습지에서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상태로 수세기 동안 머물 때 만들어지는 게 퇴적물이 '이탄'이다. 이탄이 수천 년 동안 퇴적된 이탄지는 지구의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한다.
식물은 호기성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저장하고 있던 탄소를 배출한다. 이탄지는 물에 잠겨 있는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호기성 미생물에 의한 분해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쌓인 식물들이 저장하고 있는 탄소가 방출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다.
지구 지표면의 3%만 차지하는 이탄지에는 최소 약 550억Gt(기가톤)의 탄소가 저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전 세계 토양이 저장하고 있는 탄소의 44%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탄지가 1년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0.37Gt에 달한다.
이탄지는 생물다양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마트라호랑이, 오랑우탄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다양한 생물들이 이탄지를 서식지로 삼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 직전 단계인 '위급' 종으로 분류되는 '보르네오 오랑우탄'의 개체수가 최근 60년간 60% 이상 급감한 이유로 이탄지 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탄지가 석유·가스 채굴 등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례로 2020년 인도네이사 정부가 이탄지를 포함한 서울 면적 2.7배의 땅을 논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이탄지를 경매에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은호 국립산림과학원 국제산림연구과 임업연구사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민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이탄지에 불을 붙여 밭을 일구는 화전농업을 한다"며 "이탄지가 건조해지며 지속적으로 침식이 일어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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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탄소 300억t 배출…악순환 반복돼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이탄지가 더 이상 탄소 저장고의 역할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영국 리즈대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등 공동연구팀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콩고민주공화국의 이탄지에서 최대 300억t의 탄소가 대기로 배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2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300억t은 전세계가 3년간 화석연료를 사용했을 때 배출량과 맞먹는 수치다.
연구팀은 콩고민주공화국 이탄지의 이탄이 쌓이기 시작한 1만7500년 전부터 콩고분지의 식생과 강우량을 분석한 결과 오랜시간 동안 탄소를 품고 있던 이탄지가 임계값 이상 건조해지면 탄소를 다시 대기로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온난화로 이 지역 대기가 건조해지는 현상이 이탄지의 탄소 방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먼 루이스 UCL 지리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콩고분지에서 건기가 길어지고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로 콩고 이탄지가 건조해지면 이탄지는 탄소 저장고가 아닌 탄소 배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탄지는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는 지역이기도 하다. 산불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이탄지 지역이 있다. 여기에는 전 세계 이탄지 탄소 저장량의 8~14%에 달하는 44Gt의 탄소가 저장돼 있다.
2015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서울 면적의 42배에 달하는 열대우림과 이탄지가 훼손됐다. 2019년에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 산불이 발생하는 등 인도네시아 이탄지는 지속적인 산불 피해를 입고 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기획과장은 "이탄지 산불은 불이 땅속 아래 붙어 화재 진압이 어렵고 작은 불씨가 큰 피해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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