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룰라, 브라질 되돌릴 수 있을까

김혜리 기자 2022. 11. 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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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남미의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현지시간)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에서 승리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꺾고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에 당선됐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룰라 당선인 앞엔 아마존 삼림 복구와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선거기간 동안 분열된 국론 통합 등 대형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 10월 30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게티이미지

‘브라질 좌파 아이콘’의 귀환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은 이날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동당(PT) 후보 룰라 전 대통령이 50.90%를 득표해 49.10%를 얻은 자유당(PL) 소속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3~2010년 대통령 연임을 했던 룰라 당선인은 퇴임 12년 만에 권좌에 복귀, 2023년 1월 1일부터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룰라 당선인의 승리는 아슬아슬했다. 둘의 득표율 차이는 단 1.8%포인트. 1989년 브라질의 대선 직선제 도입 이래 역대 최소 득표 차였다. 현 보우소나루 정권의 실정에 분노한 이들이 근소하게 더 많았지만, 진보·보수 유권자가 총결집할 정도로 이념 대결이 극심했다는 얘기다. 이를 의식한 듯 룰라 당선인은 대선 승리 확정 후 연설에서 “오늘 유일한 승자는 브라질 국민”이라며 “나는 나를 뽑아준 이들뿐만이 아니라 2억1500만 브라질인을 위해 일할 것이다. 브라질은 2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외신은 룰라 당선인의 세 번째 임기에서 가장 시급한 숙제는 양극단으로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룰라의 ‘통합 정치’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룰라 당선인은 자신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을 의회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지난 10월 2일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자유당은 하원에서 기존보다 22석이 늘어난 99석을 확보, 1998년 이래 단일 정당으로선 최대 의석을 차지했다.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다른 우파 정당들까지 합하면 하원의 절반가량이 보수우파 세력이다. 상원도 전체 81석 중 자유당이 13석을 차지했다. 포린어페어스는 보우소나루의 측근들이 브라질에서 가장 큰 3개주에서 주지사로 당선됐고, 자유당의 의회 지배력도 커졌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지더라도 그의 극우 정치 운동의 미래는 보장돼 있다”고 분석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 세력이 대선결과에 불복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선결과 발표 뒤 일부 지역에선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지지하는 트럭운전사들이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면서 26개주에선 도로가 차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패배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가 지지자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그는 전자투표 기기의 신뢰성에 대해 꾸준히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선거운동 중에도 줄곧 부정선거 가능성을 언급했다. 선거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이틀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11월 1일 연설에서 룰라 당선인에 대한 권력 이양 절차 개시를 승인했다. 이마저도 대선 패배를 직접 시인하거나 룰라 당선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강성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에 불복할 여지를 남긴 셈이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브라질 바진하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의미로 도로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게티이미지

‘1·2기 룰라 정부’ 때와는 다르다

룰라 당선인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릴 것이란 지지자들의 기대가 실현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룰라 당선인은 대통령을 역임했던 2003~2010년 동안 식량 무상 지원, 최저임금 인상, 최저 생계비 지원 등 강력한 빈곤 퇴치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그의 재임기간에 중산층이 3000만명 이상 늘어났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7%에서 7.5%로 급상승했다. 당시 석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가운데 원자재 수출이 증가하고,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 것도 브라질이 경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후 브라질 경제는 침체기를 맞이했다. 2014년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브라질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0년간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0.15%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현 정권의 미흡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처,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국내외 여건도 예전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기엔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빈곤문제도 악화됐다. 현재 브라질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는 3300만명 이상, 빈곤층은 1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룰라 당선인이 경제성장을 위한 뚜렷한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룰라 당선인이 사회복지 급여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이전 재임 동안 제시했던 것과 유사한 빈곤 퇴치 방안들을 제시했지만 이에 드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는 말하지 않았다며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섀넌 오닐 선임연구원은 “재산업화와 공공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이는 중남미 정치가 21세기 현실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적 자본, 자동화, 지적 재산 창출 등 미래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남미 국가들의 의제는 여전히 20세기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실망스럽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지구의 허파’ 되살릴 수 있을까

룰라 당선인은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라는 난제도 풀어나가야 한다. 보우소나루 정권은 각종 환경 규제 조치를 무력화하고 아마존 개발을 촉진하면서 환경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되기까지 했다. 올해 상반기 아마존 산림의 파괴율은 지난해보다 11% 증가해 약 4000㎢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마존의 환경상태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다다랐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마리나 시우바 전 브라질 환경부 장관은 “룰라의 아마존 우림 보존 도전은 그가 취임했던 2003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브라질 비정부기구인 기후관측소의 마르시우 아스트리니 사무국장도 “하루아침에 환경정책을 뒤집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면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파괴한 환경 범죄 대응 기구들을 복원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룰라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아마존 환경 보호를 약속해온 만큼 국제사회는 룰라의 환경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연설에서 “브라질은 기후위기와의 싸움에서 다시 리더십을 발휘할 준비가 돼 있다. 브라질과 지구는 살아 있는 아마존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11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대표단을 파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환경주의자들과 환경을 중시하는 전 세계 지도자들은 룰라 당선인의 복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보우소나루 정권 아래 아마존 보호를 위한 기금 지원을 중단했던 최대 공여국 노르웨이는 대선 결과가 나온 바로 다음 날 “과거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긍정적인 협력 재개 준비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당선인 측과 연락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는 아마존 보호를 위한 기금 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김혜리 국제부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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