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밀었다? 희생양 찾기 너머…7번의 ‘왜?’로 본 참사 원인

한겨레 2022. 11. 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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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영의 원려심모][이태원 참사][윤기영의 원려심모]
‘누가 밀었나’ ‘무정차’ 등은 희생양 찾기
대규모 행사 사전대비 없었던 게 주원인
근본 원인은 ‘열린 소통’ 문화 없었던 것
중립적 전문가의 체계적 조사로 밝혀야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호텔 뒤 골목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한 뒤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있어서는 안 될 참사가 10월 마지막 주말 밤 이태원에서 일어났다.

이태원 참사는 2014년 세월호 기억을 다시 불렀다. 생때 같은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낸 세월호 참사는 공동체인 한국사회에 깊고 넓은 상흔이다. 당시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다시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갖게 되었다. 깊고 넓은 상흔 위에 또 깊고 넓은 상처를 입었다. 그간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니, 더 쓰라리고 아프다.

그런데 정부 당국의 행태는 8년 전과 다르지 않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며, 상황에 끌려 영혼 없는 사과를 하는 듯하다. 이번 참사에서 형사 범죄가 핵심 원인이 아님에도 경찰은 칼춤을 추려 한다. 정부는 근본원인을 탐색하지 않는다. 세월호 때와 다르지 않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 다음부터는 희극으로.” 그러면서도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이” 반복되면서 전진한다. 정부 당국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슬픈 희극이다. 그 희극 속에서 전진하는 힘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원인 가설들

이태원 참사의 책임 소재와 원인을 찾는 주장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어떤 주장이 더 현실에 부합할까?

심층 원인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는 다중인과계층분석(Causal Layered Analysis)과 ‘5 whys’ 기법을 융합해 이를 도표로 그려봤다. 다중인과계층분석은 미래학 방법의 하나이며, ‘5 whys’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원인을 묻고 그 원인의 원인을 묻는 기법이다. 원인을 다섯번 물으면 근본원인에 도달한다고 해서 ‘5 whys’ 기법이라 한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라는 여러 주장을 ‘5 whys’ 기법을 응용한 ‘7 whys’로 일차 정리한 다음 다중인과계층분석의 상위 3개 계층인 현상, 과학적 원인, 세계관으로 묶었다. 다중인과계층분석은 4개의 계층으로 구성되며, 가장 하위 계층은 ‘신화 혹은 내러티브’다. 이는 일단 이번 분석에서 제외했다. 도표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근본원인에 가깝다.

다중인과계층분석과 ‘5 whys’ 기법을 결합해 작성한 이태원 참사 원인 분석도

우선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누군가가 밀었기 때문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런데 다수가 밀집돼 있는 상황에서 몇명의 힘이 밀집된 사람들을 밀 수 있을까? 수백명이 참여하는 줄다리기 경기에서 진 이유를 한 두명에게 지울 수 있을까? CCTV를 돌려보면 줄다리기 앞에 있는 사람을 찾을 수야 있겠으나 이는 희생양 찾기에 불과하다.

남의 나라 축제인 핼러윈 행사에 찾아간 희생자를 탓하는 의견도 있다. 공식화된 주장은 아니나 SNS나 댓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는 정글 세계에서는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거대한 전장이고, 거리와 영화관, 유람선 등은 전투 장소일까?

누군가 밀었거나 밀렸다면, 그 원인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밀집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의 통제가 없었고, 이태원역을 무정차로 운행하지 않아 사람들이 분산이 안 되는 등 여러 이유가 있다. 2017년 행사 땐 20여만명이 모였는데 이번엔 13만명 모였다고 한다. 사고가 없었던 2017년과 2018년엔 경찰 통제가 있었다.

이태원역 무정차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우선 경찰이 무정차 요청을 서울교통공사에 제대로 했느냐 여부다. 무정차 요청은 사전에 공문을 통해 해야 한다. 긴급한 경우라면 전화나 메신저로도 할 수 있겠으나, 112 신고 대응도 못한 경찰청으로서는 책임 떠넘기기로 보인다.

핵심 원인은 무정차보다는 사전 준비를 하지 않은 데 있다. 전화로 요청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전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징표다. 경찰 통제가 있었다면 전철의 무정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20만명이 모였던 2017년 핼러윈 축제 당시 이태원역에서 무정차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없다.

해밀턴호텔의 불법증축으로 사고 현장 골목길이 좁아진 것을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근본원인이 아니다. 일방통행만 되어도 해당 문제는 해결된다. 해밀턴호텔의 불법은 행정조처를 받아야 할 것이나, 당국이 따로 조처해야 할 일이다. 또다른 희생양 찾기에 불과하다.

112 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걸 이유로 들기도 한다. 사전대응책 준비가 근본원인이나, 그것이 없더라도 112신고에 경찰이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면 참사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29일 오후 6시부터 압사 위험 등을 신고하는 112 신고가 79번 있었다. 기동대 투입 등 제대로 된 대응만 있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때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경찰국 신설에 따른 경찰 지휘체계 분산, 시민 안전이 아닌 마약 수사 집중, 용산 대통령실 보안 우선 등이 짐작되는 정도다. 그 원인이 정부 내에 있어서 근본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이는 경찰과 검찰 등이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중립적 조사기관이 근본원인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경찰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경찰력 부족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이상민 장관은 29일 광화문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경찰력이 투입된 것을 이유로 든다. 반면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통령 집무실이 준비없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것을 근본 이유로 든다. 둘 다 일부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경찰력은 항상 부족하다.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어떤 절차로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경찰력이 그렇게 부족했다면, 경찰력이 필요 없는 이태원역 무정차라도 해야 했다. 이미 투입하기로 한 137명의 경찰 중 일부를 마약 단속이 아니라 안전사고 방지에 배치했어야 한다.

지하철 무정차와 경찰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사전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전 준비 부재는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대통령실,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은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재난안전기본법 66조의 11 1항과 3항을 든다. 1항과 3항은 각각 행사의 주최자가 정부이거나 민간인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주최자가 없는 탈중앙화된 자발적 행사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일종의 법률 미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잘못되었다. 헌법 7조, 경찰법 3조,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로 재난안전기본법의 미비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핼러윈 축제 때에도 주최자가 없었으나 경찰력을 투입해 시민 안전을 지켜온 것을 보면 관행도 있었다. 참사에 사전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법률과 제도 미비를 드는 것은 궁색하며 현행법에도 맞지 않다.

대규모 행사에 대한 매뉴얼이나 경험이 폐기 혹은 단절된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근본원인에 해당한다. 구체적 매뉴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과거 이태원 핼러윈 축제가 경찰 통제 아래 무난히 진행된 것을 보면 경찰 조직 내에 경험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매뉴얼과 경험이 단절되었다 하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는 열린 소통 문화만 있었더라도 안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열린 소통 문화를 어렵게 한 것은 무엇일까? 공무원 사회의 권위주의 문화에 주목한다. 용산구청의 한 공무원은 이번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많은 사람이 모일 것으로 보았으나, 시민 안전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열린 소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자리를 옮기고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되지 않은 배경에는 정권교체도 있을 것이다. 행안부 내 경찰국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 등이 그 근본은 아니었을까? 시장과 구청장이 바뀐 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때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7월이었다. 이후 2020년과 2021년엔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정권교체로 매뉴얼과 경험이 단절되었다면 직업공무원제가 훼손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30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상에 집중한 대응은 책임 회피

무엇을 해야 할까?

대통령실을 포함해 정부와 지자체는 참사의 원인을 현상에서만 찾고 있다. 현상은 근본원인이 아니다. 현상에 집중한 대응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희생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CCTV를 뒤져 가해자를 찾거나, 해밀턴 호텔에 책임을 씌우고 말단 경찰에게 112 신고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 회피다.

과학적 방법으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 1차적으로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것에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매뉴얼과 경험이 단절된 이유에 대해서도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는 여린 소통 문화와 절차를 강화하는 것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직업공무원제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업공무원제의 강화는 헌법정신을 지키겠다는 한국사회의 전반적 인식과 다짐을 전제로 한다. 단순한 구호와 선언으로는 헌법 정신이 지켜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의 권위주의 문화도 우리의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정부 내의 제도적 대응을 위해서는 중립적인 전문가의 체계적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112 신고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경험과 매뉴얼이 단절된 이유, 많은 사람이 참석할 것임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사전에 준비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윤기영 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synsa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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