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체계 구축·현장통제 강화…각계 전문가들이 본 해법은 [이태원 참사]
“지자체-정부 협조채널 원활히 작동해야”
지자체 책임 강화…“CCTV 활용 제고”
재난 초기 의료팀 지원할 현장통제 부족
“방송 통해 ‘용산구 비워달라’ 안내했어야”
불법증축 등 손놔…“사후관리, 정부도 개입해야”
재난연구·안전교육 강화, 트라우마 관리도 과제
[헤럴드경제=강승연·김희량·박혜원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에도 적용 가능한 대응체계를 만들고, 행정 조직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난 초기 현장을 강력하게 통제해 의료팀에 대한 지휘·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자체와 정부의 불법 건축물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7일 헤럴드경제가 만난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긴급대응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지자체, 중앙정부, 경찰, 소방이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고에 대비해 현장 대응 훈련도 체계적으로 진행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행사는 기본적으로 기초자치단체 책임인데, 역량을 넘어서면 상위기관에 지원 요청을 했어야 했다.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 중앙정부 간 인력자원 배치·협조를 위한 채널이 원활히 작동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는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는데 매뉴얼만으로는 안 된다. 진정한 의미의 현장 대응 훈련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서 훈련하는 준비까지 행정기관들이 진행해야 한다. 교통통제의 경우, 이태원역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용산구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도록 사전에 도상훈련을 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조직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행정관료 위주의 조직 편제가 개선돼야 한다”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에 재난 분야 전문성이 있는 직원들은 의사결정 상위계급이 아니다 보니, 의사결정과정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지휘관의 자원관리능력과 정보분석력 제고를 위해 실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뿐만 아니라 손 교수는 “지자체도 대규모 인파 운집 행사의 관리 주체지만 경찰과 소방에 위임하고 있는데,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며 “지자체도 폐쇄회로(CC)TV 등 정보 수집 능력이 있지만, 설치 목적 외에 활용하지 않는다. 활용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난 초기 현장에 투입된 재난의료지원팀(DMAT)이 현장지휘소의 지휘·감독 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현장을 통제하는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제언도 있었다. DMAT팀은 환자 상태를 중증도에 따라 나누는 현장분류반과 응급처치반, 환자를 병원으로 분산 이송하는 이송반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때는 현장지휘소의 명령 하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효율적 대응이 이뤄지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10~20m만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이 불가하다. DMAT팀을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현장지휘소장이 지휘·감독해야 한다”며 “이번엔 DMAT팀이 현장지휘소장의 통제 아래 움직인 게 아니라, 연습한 대로 분류반, 이송반 등을 나눠 자체적으로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재 현장이나 재난·사고에 출동한 경험이 있고 연습이 돼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지, 제대로 지휘·감독해 줄 행정적 지원은 부족했다”며 “재난 성격에 따라 상황을 판단할 현장지휘소의 강력한 지휘·감독이 필요하고, 지상파 방송 등을 통해 ‘빨리 용산구를 비워달라’, ‘집에 가라’고 안내했어야 한다”고 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일대에서 해밀톤호텔 등 일부 건물들이 무단 증축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이번에도 불법 건축물을 방치한 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매번 화재 등 사고가 나면 무단용도변경, 불법증축 등 불법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어디서든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게 온갖 불법이 판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법과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실행이 안 되고 있다. (불법을) 대강 눈감아주고 봐주고 있었던 것”이라며 “불법증축, 적치 등 골목을 좁게 하는 요인들을 이번 기회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후 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구청들이 민원 때문에 적당해 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행강제금 제도가 지자체별로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며 “사후 관리책임을 시·도에서 하고, 안 되면 중앙정부가 확실히 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를 여러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며 충격이 커진 ‘퍼펙트스톰’이라고 규정하며 “앞으로 이런 참사를 예방하려면 재난연구를 강화하고, 재난이 예상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고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주 경희대 공공대학원 객원교수는 “안전교육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며 “재난, 응급 등 세분화된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안전불감증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에 따른 트라우마 극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은 “세월호 참사 때처럼 애도기간이 끝나면 국민적 슬픔이 울분으로 바뀔 것”이라며 “국민적 울분을 조기에 잠재우려면 공공에서 심리상담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 장려하는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어 “청소년 정신건강은 더욱 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유아·청소년기에 세월호, 코로나19, 이태원 참사까지 겪으며 ‘우리 세상은 불안정하다’, ‘언제 어디서 불행이 닥칠 지 모른다’ 등의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며 안정화 기법 교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무분별한 참사 사진·영상 노출 차단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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