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를 가다] ⑩ 핵융합에너지연 '인공태양 플라스마 기술 세계선도'(끝)
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서도 9가지 제작 담당 등 주요 역할
[※ 편집자 주 = 1973년 서울 홍릉의 연구단지를 대체할 '제2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대전 유성구·대덕구 일원 67.8㎢ 면적에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가 조성됐습니다. 내년이면 출범 50주년을 맞는 대덕특구는 현재 30여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295개 연구소기업, 1천여개 벤처·중견기업, 다수 대학이 포진해 매년 수만개의 미래형 연구 결과물을 쏟아내는 국내 최대 원천기술 공급지로 성장했습니다. 연합뉴스는 대덕특구 내 연구기관 가운데 핵심 성과를 창출해내고 있는 10곳을 선정해 역사와 연구 성과, 중점 연구 분야 등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한 곳씩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핵융합에너지는 대한민국처럼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국가에 더욱 필요한 에너지원입니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하 핵융합연) 원장은 7일 연합뉴스에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 중요성 등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 편중된 기존 에너지원과는 달리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기반 에너지인 핵융합에너지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인 수소 원자핵이 서로 부딪칠 때 발생하는 질량결손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핵융합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연료도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다.
핵융합 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만 확보된다면 화석연료처럼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국내 유일 핵융합 전문 연구기관인 핵융합연은 태양의 청정·무한 에너지를 지구 위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극한 환경을 구현하는 인공태양 장치를 만들고,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국내 핵융합 연구는 1995년 국가핵융합연구개발기본계획이 확정되고, 이듬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이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KBSI 부설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를 거쳐 핵융합 연구개발을 위한 전문 연구기관 설립 필요성이 지속해 대두되면서 2020년 11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으로 승격했다.
핵융합연이 보유한 인공태양(KSTAR)은 우리 기술로 완성한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이다.
약 12년의 건설 기간을 거쳐 2007년 완공한 KSTAR는 2008년 첫 실험에서 플라스마(고체·액체·기체를 넘어선 제4의 물질로 매우 높은 온도의 에너지 상태)를 켜는 데 성공했다.
이후 현재까지 약 3만3천번 이상의 플라스마 실험을 수행하면서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한 다양한 난제 해결을 주도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태양처럼 활발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태양의 중심온도인 1천500만도 보다 약 7배 뜨거운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KSTAR는 2018년에 1억도 플라스마를 처음 달성한 이후 2019년 8초, 2020년 20초 달성에 이어 지난해에는 30초에 성공해 세계 최장 기록을 수립했다.
KSTAR연구본부 윤시우 본부장은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인 장시간 고성능 플라스마 운전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장치의 우수성, 연구의 독창성 등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에는 서울대와 공동으로 1억도 초고온 플라스마 장시간 운전 성과를 분석해 작성한 새로운 플라스마 운전모드에 관한 논문이 국제 유수 학술지인 '네이처'에 게재돼 주목을 받았다.
핵융합 실현을 위한 국제프로젝트에서도 핵융합연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한국·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인도 등 7개 국가는 핵융합에너지의 실현 가능성을 과학 기술적으로 최종 실증하기 위해 프랑스 카다라슈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공동 건설하고 운영하는 'ITE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인 ITER 프로젝트는 건설에 필요한 장치들을 각 회원국이 제작해 조달 후 건설 현장에서 조립을 진행하는데, 핵융합연 ITER한국사업단은 총 9가지의 제작을 담당한다.
2014년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초전도 도체를 조달 완료했고, 조립 장비·진공 용기 등 주요 조달품을 제때 조달해 ITER 프로젝트에서 주도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이 9개 섹터 중 4개 섹터 제작을 담당하는 진공 용기는 핵융합로 가장 안쪽에 위치해 핵융합 플라스마를 구현하는 핵심 중 핵심 부품이다.
KSTAR 건설에 참여했던 국내 핵융합 전문가들은 ITER 건설 현장에서도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
정기정 ITER한국사업단장은 "ITER 참여율은 9.09%이지만 건설·운영을 통해 얻은 정보·지식은 회원국 모두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결실은 100%라 할 수 있다"며 "ITER에 참여해 확보하는 인력·기술·경험은 향후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개발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산에 있는 핵융합연 플라즈마기술연구소는 원천기술 확보 등을 통해 플라스마 상용화를 이끌고 있다.
플라스마 기술은 약방의 감초와 같이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데 특히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제조공정 중에서 산화·식각·증착·이온 주입·금속 배선 등 다양한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인다.
지난해에는 플라스마 융합 원천 기술개발 성과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면서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핵융합연은 KSTAR 연구, ITER 프로젝트의 성공적 수행과 더불어 향후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KSTAR는 2026년까지 1억도 초고온 플라스마 300초 연속 운전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부터 핵융합 플라스마와 직접 대면하는 다이버터(diverter) 장치를 장시간 운전에 더욱 적합한 텅스텐 소재로 개발해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또, 가상공간에 실제와 똑같은 공간을 만들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의 실험해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인 '디지털 트윈'과 핵융합 연구를 결합해 가상 세계 속 KSTAR인 '가상(Virtual) KSTAR'를 구현하고 있다.
'V-KSTAR'는 KSTAR의 외형뿐만 아니라 기능적 측면도 구현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연구·개발을 통해 향후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위한 기술 검증의 한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TER 프로젝트 공정률이 77%를 넘어 완공을 앞둔 만큼 진공 용기의 마지막 섹터 등 남은 담당 조달 품목을 제때 조달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게 된다.
향후 핵융합 실증로 건설·운영 등을 위한 우수 인력 양성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ITER 건설 현장에 더욱 많은 국내 인력이 파견될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할 방침이다.
유석재 원장은 "향후 ITER에서 대용량 핵융합에너지 생산 가능성을 실증하는 2035년 무렵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이후 각국의 전력생산 실증을 위한 핵융합발전소 건설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기에 핵융합 실증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jun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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