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석과 이정현, 타짜와 타짜의 만남

김종수 2022. 1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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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도박판에서 남을 잘 속이거나 현혹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어떻게 봐도 좋게 볼 수 없는 단어인데 다른 업종이나 영역으로 가면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히 스포츠 쪽에서는 종목에 대한 이해도와 기술을 두루갖춘 테크니션의 의미를 가지는지라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현재 KBL 정규리그서 삼성의 기대 이상 성적을 이끌고 있는 은희석 감독과 주장 이정현은 둘다 타짜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현재 삼성은 9경기에서 5승 4패로 현대모비스와 함께 공동 4위를 기록중이다. 선두 KGC의 기세가 워낙 높아서 그렇지 2위 DB와는 불과 1게임 차이다.


이제 1라운드 밖에 치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초 꼴찌 후보로 평가받은 것에 비하면 충분히 이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은 감독과 이정현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인데 놀랍게도 둘은 올시즌 새로이 삼성에 합류한 인물들이다. 은감독은 신임 사령탑이며 이정현은 FA로 팀을 옮겼다. 각각 짧은 프로 무대 지도자 경험, 전성기가 지난 노장이라는 단점을 지적받았지만 현재까지는 혹평이 무색할만큼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성적도 안나고, 세대교체도 안되고, 사고는 사고대로 일어나고… 그렇다면 확 휘어 잡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이게 구단의 결론이다’

삼성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현대(현 KCC)와 함께 리그에서 손꼽히는 전통의 명문이다. 하지만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을만큼 KCC와 격차가 벌어진지 오래다. 김동광 시대, 안준호 시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그정도로는 성에 차지않는다. 특히 큰 기대를 걸었던 이상민 전 감독의 장기집권 시기에 성적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최근 들어서는 연이은 하위권으로 인해 약체 이미지까지 생겨버렸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속해서 1순위 지명권을 얻는 등 세대교체에서라도 가능성을 보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외려 소속 선수들의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터지며 결국 이상민 체제는 무너지고 만다. 선수 시절 영리한 이미지가 컸던 이상민이 실패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언급되고 있으나 무엇보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팀에 지나치게 자율성을 줬다는 부분이 많이 지적된다.


KGC같이 핵심급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고, 고참들이 잘 이끌어가는 팀이었다면 다를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어쨌거나 삼성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잘 써가며 힘있게 선수단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인물을 모색했고 그렇게 데려온 감독이 바로 은희석이다.

‘내가 2순위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지명순위가 너무 높다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 나만큼 연봉받고 누적기록 쌓아가고 있는 놈은 나 혼자 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가까이 붙는놈 돌파로 제끼고, 떨어진놈 슛으로 보내고, 어리버리 수비하는 새끼들…, 파울 유도로 다 죽였다. 삼성아, FA 하나 찔러봐’

이정현은 올시즌을 앞우고 계약기간 3년, 보수총액 7억 원(연봉 4억 9,000만원+인센티브 2억1,000만원)에 삼성으로 둥지를 옮겼다. KCC에 애정이 많은 선수였던지라 잔류 의지도 강했으나 이미 구단에서는 새판을 짜기를 원했고 그런 과정에서 남았다해도 금액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정현은 누구나 인정하는 ’농구 도사‘중 한명이다. 슬래셔, 슈터 등 어느 한쪽만 놓고 봤을 때 최고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양쪽 모두에서 고른 능력치를 발휘한다. 내외곽을 오가며 3점슛, 미들슛, 돌파 등의 다양한 옵션으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드는가 하면 슛감이 좋은 날은 폭발적인 슈팅 몰아치기로 단숨에 분위기를 지배해버린다.


2번치고 체격도 좋은 편인지라 매치업 상대가 자신보다 작다싶으면 포스트업 등으로 득점을 올리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도 가히 장인급이다. 공격력에 다소 기복이 있음에도 꾸준히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이유다. 거기에 더해 패싱 플레이를 통해 동료들을 살려주는데도 능해 전천후로 팀 공헌도를 가져간다.
 


보수총액 7억? 노장인데 7억을 태워?’
앞서 언급한 다재다능하다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정현이 농구를 잘하는 선수라는데는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문제는 전성기가 지난 1987년생 노장이라는 점이다. 한창 때에 비해 운동능력 등이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볼을 많이 가져가면서 플레이하는 것을 즐기고, 무엇보다 본래도 좋지않았던 스피드가 더욱 떨어져 수비시 자신이 득점한 것 이상으로 실점을 허용하는 모습도 자주 노출했다.


KCC에 있을 때도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같은 약점을 지적받았다. 공격으로 가져가는 것 이상으로 수비에서 많이 잃어버렸다. 때문에 삼성에서 좋은 조건으로 영입할 때만 해도 ‘노장에게 조금 과하지않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은감독과 삼성에서는 다른 부분에 더 초점을 두었다.


KCC시절에서도 증명됐다시피 이정현은 많은 후배들이 믿고 따를 정도로 리더십이 좋은 선수다. 선수들을 잘 이끌고 분위기도 밝게 해준다. 젊은 선수가 많은 삼성은 팀의 구심점이 될 무게감있는 베테랑이 필요했다. 당장 우승을 노릴 전력이 아닌지라 당분간 성장하는 단계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팀내 기대주들에게 좋은 멘토 역할도 가능한 이정현을 적임자로 선택한 것이다.


당장의 기량이 우선시되는 FA에서 매우 드문 사례이기는 하다. 어쨌거나 현재 이정현 영입은 성공적이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팀 성적이 좋다. 한창 때만큼은 못하겠지만 여전히 이정현은 리그 수준급 공격수이자 핸들러이다. 무엇보다 접전상황시 젊은 선수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팀에 안정화를 가져온 부분도 크다. 약점인 활동량 같은 경우 팀 컬러 자체가 젊은 선수들을 내세운 많이 뛰는 농구인지라 서로간 시너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단점)묻고 더블 로테이션으로 가!’

현재 삼성 선수 중에는 공수 모두에서 꾸준한 안정성을 가진 선수는 없다. 득점, 어시스트, 리딩 등 공격 생산력은 여전히 리그 상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수비에서 문제점이 늘어나고 있는 노장 이정현과 김시래, 신장만 놓고 봤을 때는 장신 슈터이지만 정작 사이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있는 장민국과 임동섭, 그 외… 이원석, 이동엽, 이호현 등 대다수 선수들이 장점과 단점의 경계가 뚜렷하다.


어찌보면 조합이나 사용법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풀어내기 힘든 실타래 일수도 있었으나 은희석 감독은 다양한 로테이션을 통해 이를 풀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상황에 맞게 서로가 장점을 공유하고 단점을 커버하는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정해진 시간 속에서 집중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감독 은희석, 주장 이정현의 노련한 ‘타짜 조합’이 올시즌 삼성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백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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