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없는 학생선수들] ④좌절 딛고 일어선 힘도 "학교서 배웠다"

이상서 2022. 11. 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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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22학번 새내기 된 고교야구선수 출신 이서준-박건우
"운동장에서 땀 흘리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 편집자 주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열기가 한창인 지금, 그 이면에는 프로 무대에 서기 위해 땀 흘리는 수천 명의 꿈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프로 문턱에서 좌절하는 학생선수가 1천 명에 달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이 '제2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학습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연합뉴스는 학생선수와 그 가족, 교육·체육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런 실태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기사 4편을 제작, 순차적으로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한솔 인턴기자 = "주변에서 '서울대 입학했으니 이제 야구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고 많이 해요. 그런데 저희는 공부도, 야구도 둘 다 놓지 않을 거예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올해 나란히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22학번 새내기가 된 덕수고 야구부 출신 이서준(19) 군과 신일고 야구부 출신 박건우(20) 씨는 '공부와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보기 드문 경우다.

하지만 학생선수 대부분은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공부와 운동이라는 양 갈래 길에서 한쪽만 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실적으로 병행하기가 그만큼 힘든 탓이다.

고교 학생야구선수 출신 서울대 22학번 서울대 체육교육과 22학번 새내기가 된 덕수고 야구부 출신 이서준(왼쪽) 군과 신일고 야구부 출신 박건우 씨. [촬영 정한솔]

지난달 12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이들은 "공부를 놓지 않았던 덕분에 프로야구선수를 포함한 다양한 꿈을 품을 수 있었다"며 "지금은 그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따르면 KBSA에 정식 등록된 고교선수 가운데 서울대에 입학한 선수는 2013년 덕수고 외야수 이정호와 2017년 서울고 외야수 홍승우를 포함해 이제 4명으로 늘어났다.

이서준 군은 지난해 12월 수시전형으로 합격했고, 박건우 씨는 올해 2월 일반전형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군은 서울대 합격증을 받아들기 몇 달 전 열린 '2022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된 아픔을 맛봤다.

지난해 2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97, 안타 29개 등 좋은 성적을 올리며 고교야구 주말리그 후반기 감투상을 받았던 그였기에 실망도 컸었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흘려온 땀이 외면받은 거잖아요. 아쉬웠죠. 한편으로는 지금 힘든 감정이 서울대에 합격하면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아 얼른 수시 준비에 들어갔어요."

이 군은 글러브를 끼기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과 '공부도 병행하겠다'고 한 약속을 꾸준히 지켜왔기에 줄곧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일찍이 덕수고 정윤진 감독도 그에게 프로를 준비하면서 서울대 입시도 함께 대비하자고 권했다. 드래프트 탈락 이후 당황하지 않고 수시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서울대 야구부 소속으로 경기에 임하는 이서준 군. [본인 제공]

박 씨는 프로구단 미지명이라는 아픔을 이 군보다 1년 먼저 겪었다.

그는 "고3 시절 후반기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라면서도 "프로야구선수라는 평생의 꿈 앞에서 좌절한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프로 진출에 실패한 그해 서울대 수시모집에서도 낙방한 그는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고 재수를 준비했다.

고등학교 때도 학교 수업을 충실히 이어갔던 덕분에 성적은 금세 올라왔다.

운동하면서 키운 체력 덕분에 매일같이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4시간을 공부해도 할만했다고 한다.

박 씨가 "서울대 합격했을 때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이 떠올라 혼자 많이 울었다"고 하자, 이 군도 "나도 합격증 받아드니까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학교에서도 낯선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군은 "학생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학풍이 있던 덕수고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중학교 때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애들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선생님들이 내 (높은) 성적을 보더니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며 "그럼 난 '야구는 좋아서 하는 거고 공부는 학생이니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프로야구선수라는 10대 시절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일고 시절 마운드에 선 박건우 씨. [본인 제공]

박 씨는 "원래 성격이 좀 이기적이었는데 야구를 시작하면서 협동심과 팀워크를 배우면서 교우관계도 좋아졌다"며 "무엇보다 패배를 털고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야구를 통해 '이타심과 정신력'을 길렀다고 밝힌 이 군은 "그라운드에서 수백 개씩 공을 받고 던지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버티는 힘의 가치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이들이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은 같다. 운동이 고된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을 아예 놓지는 말라는 것이다.

박 씨는 "각자 인생의 목표가 다르니까 모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라고 말할 순 없다"며 "다만 운동부원 말고도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급우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공부도 하게 됐던 경험에서 비롯된 당부다. 당시 친구의 권유로 학술동아리에 가입하면서 학생선수로서는 드물게 교내대회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 군도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방과 후 활동이나 교내 행사 등 학교생활에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학생선수가 아닌 친구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아웃'이 아닌 '파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이어지니까 낙심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들에게 '학생선수가 왜 공부해야 하냐'고 묻자 "그 질문처럼 학생선수가 공부 못하는 게 당연시되는 게 싫다"며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사회적 편견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선수라는 10대 시절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들에게 야구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다.

박 씨는 "스포츠 에이전트나 변호사 등 이제까지 해왔던 운동과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며 "중요한 사실은 야구선수가 아니더라도 많은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난 아직 욕심이 남았다"며 "서울대에서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또 한 번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오히려 고교 시절보다 야구가 더 좋아졌다"며 "입시경쟁이나 성적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박 씨도 "나도 그렇다. 대학 와서 야구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고 맞장구쳤다.

학생야구선수 출신 서울대 22학번 덕수고 야구부 출신 이서준(왼쪽) 군과 신일고 야구부 출신 박건우 씨. [촬영 정한솔]

shlamazel@yna.co.kr

[글 싣는 순서]

①매년 야구 꿈나무 1천명이 '꿈' 접는다

②"운동만도 벅차" vs "공부는 학생 본분"

③그들이 '제2의 꿈' 찾을 수 있게 하려면

④좌절 딛고 일어선 힘도 "학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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