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보다 강한 외풍…“차이나런 땡큐”
‘차이나 런’ 머니 국내 유입 가능성… 반도체·2차전지 사들여
“리스크 국내 전이로 신용경색 현상 심화될 수도”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북풍’이 불었지만 ‘외풍’이 더 강했다. 북한이 연일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으나 외국인 투자자의 ‘바이 코리아’가 이어지면서 증시는 오히려 상승세다. 긴축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데다 치솟던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독재체제 완성으로 중국시장에서 빠져나온 이른바 ‘차이나 런’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수혜를 입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6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북한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영해 근처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를 발사한 지난 2일 이후 4일까지 코스피 지수는 0.57%(13.21포인트) 상승했다. 이튿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연합공중훈련에 대응해 미그와 수호이 등 군용기를 띄우는 등 도발 강도를 높였으나 증시는 견조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외국인 ‘사자’ 견조
강력한 대북 리스크에도 증시를 떠받친 건 외국인이었다. 북한 도발 이후 기관과 개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7687억 원, 7860억 원대 순매도하는 사이 외국인은 1조4780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온 사자세가 강력한 대북 리스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과거 북한의 핵실험이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국내 시장에서 발을 빼던 모습과는 반대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투심이 악재 대신 호재에 반응하면서 북한이 도발 수위를 올렸음에도 시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북한의 안보 위협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 수급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배경으로 환차익으로 인한 코스피 투자 매력도 증가와 함께 차이나 런을 꼽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으로 사실상 독재체제가 완성되면서 △미·중 갈등 격화 △시장주의경제와의 단절 △대만과의 군사적 긴장감 확대 등을 우려하며 이탈한 외국 자본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국 연기금이 신흥국 증시 내 중국 비중을 줄이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미국 텍사스 퇴직 교직원 연금(TRS)은 신흥국 주식 벤치마크(BM)를 기존 100% MSCI EM에서 50% MSCI EM과 50% MSCI EM ex China로 변경해 중국 주식 투자 비중을 낮추고 대만, 인도, 한국 등 타국가 비중을 높였다. 이에 따라 TRS의 EM 주식 내 중국 비중은 35.4%에서 17.7%로 줄어들고, 한국 비중은 11.2%에서 14.3%로 늘어났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탈 중국 자금이 추가적으로 국내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앞으로 미·중 갈등 추이와 연기금 등 글로벌 자본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반도체·2차전지 종목 집중 매수
국내로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형주 혹은 반도체나 2차전지 관련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 순매수 상위 종목은 삼성전자(005930)와 삼성SDI(006400), SK하이닉스(000660), LG에너지솔루션(373220), KT&G(033780) 등이다. 하락장에서도 강한 체력을 확인했거나 주가 반등에 성공한 종목이다. 반면 NAVER(035420)와 POSCO홀딩스(005490), 카카오(035720), 고려아연(010130) 등 3분기 실적이 저조하거나 성장성이 불투명한 종목들은 순매도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9월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내 증시의 외인 매수세는 기계적인 비중 확보와 더불어 실적 개선이 가능한 기업을 선제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 가능하다”며 “외국인 수급이 이어지고 있는 2차 전지, 자동차, 운수창고, 비철금속, 기계 업종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수혜를 받긴 했으나 차이나 런은 결국 국내 경기 및 금융시장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중국 경제의 저성장은 물론 신용경색 리스크를 자극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이라는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대중국어권 수출은 국내 제조업 경기 둔화 압력을 높일 수 있다”며 “중국발 신용리스크가 전이돼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국내 신용경색 현상이 더욱 심화될 공산이 크며, 원화가치 약세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현 (sei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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