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그만]① 깔리고 끼이고 추락…중대법도 못막은 446명 비극, 왜?
안전시설 투자, 비정규직 안전교육, 처벌 강화…정책적 안전망을
[편집자주] 1월27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개월째,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했지만 노동 현장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터에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중대법 시행 후 9월말까지 433건의 중대재해로 44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행 전과 매한가지다. 중대법 그물망도 빠져나가는 구멍이 여전히 큰 까닭일까. 현행 중대법만으로 막을 수 없는 사각지대를 조명하기 위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한계를 6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전국=뉴스1) 이윤희 최대호 양희문 기자 =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하루 평균 1.8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 숨져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색할 정도로 산업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법 무색…전국 곳곳서 노동자 인명피해 여전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전국 곳곳의 산업현장에선 각종 사고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지난 1월29일 경기 양주에선 삼표산업 채석장이 붕괴돼 작업 중인 근로자 3명이 매몰돼 숨졌다. 당시 이 사건은 중대재해법 1호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골재 채취 폭파작업을 위해 아래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다가 토사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대재해법 이후 사망사고가 4차례나 발생한 업체도 있었다. 국내 도급 순위 3위 건설사인 DL이앤씨다.
DL이앤씨는 올해 3월13일 서울 종로구 소재 공사현장에서 전선 포설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전선 드럼에 맞아 숨졌고, 4월6일에는 경기 과천 소재 공사현장에서 토사 반출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굴착기와 기둥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또 8월5일에는 경기 안양 소재 현장에서 바닥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부러진 펌프카 붐대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10월20일에는 경기 광주 소재 안성-성남 간 고속국도 건설공사 9공구 현장에서 크레인 붐대 연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추락해 숨졌다.
지난 5월 제주 한 호텔 신축 공사현장에선 철재 펜스에 깔려 60대 근로자가, 전북 군산 한 철강공장에선 일하는 50대 근로자가 지게차에 실려있던 블룸(4각 또는 원형 단면으로 만든 가늘고 긴 강재)에 부딪혀 숨졌다. 같은 달 경기 성남시 한 건물 신축공사장에선 화물차 운전자가 적재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전남 여수국산업단지에서도 최근 7년간 폭발과 화재, 가스누출 사고로 18명이 숨지고, 36명이 부상하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그중 올해 2월 발생한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친 여천 NCC 3공장 폭발사고는 최근 7년간 인명피해가 가장 많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국내 최대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도 올해 들어서만 벌써 2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고,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도 매년 크고 작은 폭발사고로 인명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 올해 1~8월 산업재해로 432명 숨져…지난해 동기간 대비 9명 줄어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총 432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명 줄어들었지만,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수치다. 중대재해 사고 건수도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400건 발생했다. 이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건 감소하는 데 그쳤다.
최근 작업 중 끼임사고로 20대 여성 근로자가 숨진 경기 평택 SPL(SPC로지스틱)이 속한 SPC그룹에서도 1월부터 9월까지 115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SPC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은 더 심각하다.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5년 9개월간 총 139건의 산재가 발생했다. 유형별로는 ‘넘어짐’이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끼임’ 23건, ‘절단‧베임‧찔림’ 22건 등 순이었다.
지난 21일 붕괴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친 경기 안성 물류창고 시공사인 SGC이테크 건설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31일 인천 서구 원창동 물류센터 신축현장 3층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던 60대 노동자가 작업 중 10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해당 물류센터 시공사 역시 SGC이테크 건설이었다.
◇노동자 안전보단 이윤 우선이 문제…경영 책임자 처벌 강화해야
산업현장에선 노동자 안전보단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업주들의 그릇된 생각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관련 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강업체 직원 A씨(40대)는 “사측이 생산 위주의 투자만 하다 보니 안전 부분은 상당히 미흡하다. 노동자의 생명보단 이윤이 우선인 것 같다”며 “노동자들은 자동화시스템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수십 톤에 달하는 코일을 노동자들이 손수 옮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회사에서 하는 건 안전관리자들이 교대로 순찰하면서 개인보호구 단속이나 하는 게 전부”라며 “안전 설비에 대한 투자가 없는데 매년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동차부품업체 직원 B씨(50대)는 “최근 노동자 1명이 이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 협력업체 직원이었다”며 “협력업체 직원과 같은 비정규직은 업무의 흐름을 잘 모르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아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경영진은 비용 감소를 위해 계속해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이들에 대한 안전교육 등이 확실하게 이뤄지면 모르겠지만, 다치면 다시 뽑으면 그만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서 현장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으면 너무 안타깝다. 경영진의 이윤 추구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관계자는 "반복되는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수사의지 결여에 따른 현장 책임자들이 처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올해 발생한 사고 중 단 6건만 검찰에 송치됐다. 기소된 건은 현재까지 없다"며 "결국 처벌받을 줄 알았던 사업장들이 처벌받지 않자, 더욱 안전수칙 의무 이행이 소홀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영국 변호사(파리바게뜨 공동행동 상임대표)는 “중대재해 사고가 400건 이상 발생했는데 지금까지 경영책임자가 구속된 경우는 없다. 법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의문이다”며 “회사들은 CSO라는 없었던 직책을 만드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다. 실제 CEO들을 처벌한다면 산업재해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CEO에 대한 처벌과 동시에 유럽처럼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 매출액의 몇 퍼센트를 과징금을 매기는 등의 제도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업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 설비 투자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노동자들의 안전의식 결여를 지적하는 사용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아무리 안전을 강조한다 해도 작업 당사자가 이를 소홀히할 경우에 따른 사고 발생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수도권의 한 철거업체 대표는 “현장 안전조치와 함께 매일 아침 작업 전 안전교육을 실시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으로 생각하고 이를 허투루 듣는 작업자들도 많다”며 “그런 이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감독한다는 건 현실 여건상 불가능하다. 작업자 스스로의 안전의식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sun07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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