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선 "서로 힘 실어주는 '재즈 커뮤니티' 좀 더 생겼으면"
기사내용 요약
국내 간판 재즈 색소포니스트 겸 작곡가
11일 서교동 서교스퀘어서 '브레스 오브 에이트' 공연
내로라하는 색소포니스트 8명 함께 하는 무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존의 공로와 현재의 결실을 혼동해서는 안 되지만, 색소포니스트 겸 작곡가 남유선은 과거든 지금이든 국내 재즈 반경을 넓히는 데 일조하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던 19세에 처음 색소폰을 시작해 미국 버클리 음대와 뉴욕대 대학원을 거친 그는 한국대중음악상 2회 노미네이션(2019·2022)을 받으며 대중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즈뮤지션 앞에 붙는 여성이라는 수식을 일찌감치 떼어버리고,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며 국내 재즈계를 대표하는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다. 오는 11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서교스퀘어에서 펼치는 '브레스 오브 에이트(Breath of 8)' 역시 마찬가지다. '8개의 숨결'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공연은 남유선을 비롯 내로라하는 색소포니스트 8명이 함께 하는 무대다. 다른 관악기(트럼펫·트롬본 등)를 제외하고 오로지 색소폰이라는 단일악기로만 구성된 앙상블과 리듬섹션이 결합된 공연은 드물다.
색소폰 앙상블의 4~5인조 편성은 가끔 접할 수 있다. 재즈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색소폰 8인조 옥텟(octet) 편성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다. 재즈 비평가 겸 기획자인 김현준과 함께 기획한 공연으로, 지난달 13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먼저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국내 재즈 신(scene)을 이끌고 있는 다양한 세대의 색소포니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남유선·신명섭·이용석·여현우 등 40대의 중진 연주자들, 송하철·정재동 등 30대의 중견 연주자들, 이삼수·이수정 등 20대의 젊은 연주자들이 음악적으로 연대한다. 총 8명의 색소폰에 오은혜(피아노)·전창민(베이스)·신동진(드럼) 피아노 트리오가 더해진 총 11명 편성은 대형 앙상블 그 자체로 압도감을 준다. 최근 개포동에서 만난 남유선은 "재즈 뮤지션들끼리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왜 색소폰 8대인가요?
"색소폰 종류가 4개예요. 바리톤, 테너, 알토, 소프라노가 있죠. 네 대로 하는 색소폰 퀄텟은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에서도 많아요. 종류별로 하나씩 더 들어가는 8개의 큰 편성은 거의 없으니, 새롭게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죠. 그렇게 되면 트럼본·트럼펫 같은 금관악기가 들어가는 빅밴드 음악을 해야 하는데, 색소폰은 목관악기 거든요. 텍스처가 똑같은 색소폰들끼리만 편성하면 재밌을 거 같았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시면서 색소폰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부분이 있나요?
"색소폰은 연주하는 사람마다 정말 소리 차이가 크다는 거요. 음악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예요. 남유선이 부는 알토 색소폰과 이삼수가 부는 알토 색소폰의 톤 자체가 달라요. 또 똑같은 소프라노 색소폰이라고 해도 멜로디를 누구한테 주느냐에 따라 고음이 달라지죠.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색소폰의 여러가지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죠. 다만 원래 관악기 연주자들의 수가 많지 않아서 서로의 연주 스타일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역할 분담이 확실히 되더라고요. 그것이 편곡을 더 빛나게 해준 부분이 됐습니다."
-이번 색소폰 연주자분들이 40대·30대·20대 골고루 섭외가 됐더라고요. 의도했던 부분인가요? 참여 기준이 있었습니까?
"섭외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저는 40대인데, 젊은 재즈 뮤지션이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거든요. 찾아보니까 있더라고요. 기준은 앨범을 낸 이력이 있거나, 한번이라도 리드를 해본 경험이 있거나, 자기 앨범이 없어도 사이드맨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한 분들이었어요. 삼수·재동·하철·수정 씨는 리더 앨범이 있고 명섭·용석 씨 역시 계속 활동해왔고 현우 씨는 클라리넷 등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멀티 연주자여요. 사이드맨으로서 활동도 많이 하고 있죠."
-빅밴드 편성은 분명 매력적인데 국내에선 주로 축제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에 치중된 거 같아 아쉬워요.
"빅밴드 편성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활발히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국내에선 드물죠. 어느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가능한 일인데, 미국에서 10년 있다가 한국에 와서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재즈를 더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식으로 재즈를 전달해야 이 음악의 가치를 알릴 수 있을까 늘상 고민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가 지나면서 관악기가 가장 위험한 악기로 치부됐고, 숨을 쉰다는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이제 코로나가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으니 호흡을 내뱉는 악기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국 재즈의 커뮤니티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가 단기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됐으면 해요. 어떤 장르가 됐든 국가에서 보존을 해주는 오케스트라 등의 단체가 있으면 그 장르는 생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재즈가 어려운 이유는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거든요. 클래식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관현악단이 있고 국악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관현악단이 있는데 재즈 역시 국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팀이 있다면 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식 재즈 장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국악을 사용하는 거 말고도 한국 사람이 가진 정서를 담아낸 재즈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들었을 때도 괴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작곡하는 곡의 멜로디가 좋은데 그래서 선율에 신경을 쓰는 거냐고 묻자) 네 그런 거 같아요. 어릴 때 유희열, 윤상처럼 한국 가요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멜로디를 쓰게 된 거 같아요."
-작년에 발매한 3집 '싱스 위 로스트 & 파운드(Things We Lost & Found)'에선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사용하셨습니다.
"색소폰 이펙팅에 관심이 생겼었어요.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색소폰 소리 자체를 변형시키고 싶었죠. 에이블톤 라이브라는 즉흥 연주에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함께 사용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클럽에 랩톱을 들고 다니면서 실험해보기도 했죠. 사실 3집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피아노 트리오에 신시사이저를 얹거나 어쿠스틱 사운드에 신시사이저를 섞는 건 부담이 없는데 색소폰은 음역대가 신시사이저랑 블렌딩되기가 어렵더라고요. 색소폰 음역대가 어쿠스틱 사운드 중에서도 센 편인데 신시사이저 사운드도 세니까요. 또 재즈셋에선 일렉트로닉 베이스보다 콘트라 베이스를 많이 쓰는데 신시사이저 저음이랑 많이 부딪히기도 했어요. 사운드 텍스처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나름 타협점을 찾아서 몇 곡 정도에서 문제를 해결했죠."
-색다른 사운드 고민은 기존 사운드의 풍성함을 위해서인가요? 기존 사운드에 한계를 느껴서인가요?
"색소폰 소리를 다른 사운드로 만드는 거 자체에 재미를 느꼈어요. 소리가 증폭되면서 나갈 때 생기는 강렬함이 있더라고요. 앨범은 3년 주기로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앨범 작업을 하는데 제겐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전 방식으로는 세팅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죠. 1집('Light Of The City')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운드를 들려준 퀸텟 앨범이었고, 2집('Strange, But Beautiful You')은 퀸텟이기는 한데 작곡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었어요. 3집은 방법을 달리해서 신시사이저를 넣었고요. 2015년, 2018년, 2021년 이렇게 앨범을 냈네요. 다음 앨범은 구상 중인데 조금 더 큰 편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번 공연에선 슈베르트, 바흐, 에릭 사티 등 클래식부터 재즈 스탠더드인 테드 대머런(Tadd Dameron)의 '굿 베이트(Good Bait)', 스티비 원더의 '수퍼스티션(Superstition)',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삽입곡인 랜디 뉴먼의 '유브 갓 어 프렌드 인 미(You've Got a Friend in Me)', '엄마야 누나야' 등 다양한 곡들을 들려주십니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신경을 쓴 건 어떤 지점인가요?
"모두가 더 많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클래식이랑 재즈 곡이랑 팝, 포크 등 유명한 곡들 중심으로 골라 편곡을 했어요. '유브 갓 어 프렌드 인 미', '엄마야 누나야' 등에서 색소폰 여덟 대를 씁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하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건 재즈 콜렉티브를 만들어나겠다는 것처럼 들렸어요. 공동체를 통한 연대를 하고 싶다는 의지인가요?
"이미 재즈 협회는 많아요. 저는 이런 공연들을 계기로 커뮤니티가 좀 더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뉴욕에 있을 때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힘이 됐거든요. 뉴욕엔 유명한 뮤지션이 많아서 제가 공연할 때 브래드 멜다우도 하고 키스 재럿도 해요.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공연을 많이 보러 와 줬거든요. 함께 잼 연주를 하고, 서로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이 음악을 어떻게 하면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고.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면서 각자의 길을 찾는 동시에 모두가 그래미를 향해 가는 게 목표인 삶이 뉴욕 재즈 커뮤니티였어요. 가난했지만 음악적으로는 행복했고 모두 뉴욕의 문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게 쉽지 않아요. 다들 각자도생하기에 바쁘고, 시장이 좁다보니 기획자들도 공연을 기획하기가 쉽지 않고요.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 커뮤니티 안에서 더 힘을 실어주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선배든, 후배든 새로운 작업이 있으면 직접 티켓을 사서 꼭 가서 봐요. 제 작업을 하려면 인풋이 필요하니까요. 다른 뮤지션들이 어떤 곡을 쓰고 어떤 연주를 하는지 공연에서 확인하는 게 필요하거든요. 전 그런 액션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러 가니까, 그 만큼 다른 재즈 뮤지션들도 제 공연을 보러 오고 그렇게 선순환이 생기는 거죠. 이번 공연은 지난달 김해에서 이미 선보였는데 11명의 뮤지션이 하나의 현장에서 모이는 게 힘든 일인데 같이 보니까 그 자체로 힘이 되더라고요. 특히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 만나기가 더 힘들잖아요. 색소폰 8대가 같이 움직이니까 재밌고 그렇다 보니까 공연 분위기도 좋고 감회가 새로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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