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중심 국정운영 '열쇠' 자문회의, 대통령 참석으로 힘 실려"
문재인정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던 염한웅 POSTECH(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과기자문회의 위상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과기자문회의는 1987년 설치 근거가 마련됐고 2004년부터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최상위 정책 의사결정기구다. 그러나 과기자문회의는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고 '무늬만 대통령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염 교수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과기자문회의만 잘 운영해도 윤석열정부가 공언한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과기자문회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배경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으면서 부처 장관 대신 실·국장들이 대리 참석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 직속 기구는 대통령이 참석해야 힘이 실린다"고 조언했다.
12대 전략기술은 차세대 반도체를 포함해 우주항공·원자력·양자 등이다. 세계 각국이 기술패권 경쟁을 펼치면서 과학기술은 단순 기술을 넘어 경제와 산업, 안보와 외교를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이에 윤석열정부는 핵심 R&D(연구개발) 정책으로 12대 전략기술 육성을 꼽은 것이다.
다만 염 교수는 현 정부 과학기술과 인력 정책 등이 '반도체'로 대변된다며 '중심 잡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의 전체 R&D 정책과 인력 육성 방향이 반도체로 대표되면 균형이 무너진다"며 "결국 정책을 만드는 부처 관료에 영향을 미쳐 나머지 부분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염 교수는 과학계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다. 정권과 무관하게 일하고 과학계에 필요한 정책을 직언을 해오면서다. 그는 이명박정부 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밑그림을 그렸다. 이어 박근혜정부 시절 과기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문재인정부 5년간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그간 국가 R&D는 민간이 하지 못하는 탄소중립·감염병·미세먼지·고령화 등 공공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염 교수는 "윤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은 후보시절부터 '과학'을 강조했지만 현재 거버넌스(조직 체계)로 드러난 건 없다"며 "대통령실엔 과학수석이 없고, 문재인정부 때 있었던 과학기술보좌관마저 폐지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거버넌스가 후퇴했다는 인상은 있지만, 과기자문회의만 제대로 운영해도 실익이 크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가 만들고자 했던 대통령 직속 '민관 과학기술합동위원회'는 바로 과기자문회의"라면서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그리고 대통령이 정책을 논의하는 이상적인 구조를 만들어놨고, 운영만 잘해도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염 교수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는 장관들이 무조건 온다"며 "1년에 몇 번이든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주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사람들은 대통령실이나 수석들이 모든 부처를 끌고 가는 모양을 바라지 않는다"며 "과학기술이 정말 중요하다면 과기자문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거나 대통령실 수석을 통해 민관이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산하에 과학기술비서관이 있다"며 "과학수석이 없다면 경제수석이 과기장관회의 멤버에 들어가 회의를 이끄는 형태가 돼야 정책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경제 위기상상황에서 과학기술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사회 모든 정책을 경제 관료가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답했다. 이어 "감염병, 탄소중립, 고령화 등은 경제 정책이 아닌데 여전히 경제 관료들이 의사결정을 다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런 구조가 안 된다면 독일·중국처럼 경제수석이나 주요 보직에 과학기술계 인사를 포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장관급인 과학수석은 필요하다고 봤지만, 과학기술부총리 제도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그는 "부총리제는 득이 없고 상징적 의미만 있다"고 했다. 이어 "장관이 부총리가 된다고 부처 간 협의가 잘 이뤄진다고 보지 않는다"며 "일단 과기자문회의라는 대통령 직속 기구를 제대로 운영해 민관이 함께 정책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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