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목 터져라 구조하고 “더 못 구해 죄송합니다” 울먹인 김 경사
우리 곁 영웅들
손발만 바쁜 경찰 조직
지휘부는 오작동
기강 해이 바로잡아야
국민 안전 지킨다
기자 초년 시절, 사회부에 배치돼 군대 문화 비슷한 ‘지휘-보고 체계’의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사건·사고를 다루는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들은 서울 전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담당한다. 첫 출입처가 종로-성북-종암 경찰서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경찰서, 소방서, 관내 대형 병원을 챙기며 작은 사건·사고도 놓치지 않고 보고하는 것이 일과였다. 한 줄 기사감도 안 되는 자잘한 사건·사고를 챙기면서 이 직업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말단 경찰 기자가 해내는 몫이라는 게 업무량은 과중해도 중요도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한 조각이었다. 그래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큰 사건 놓치면 안 되니 긴장의 연속이다.
훨씬 중요하고 힘든 일은 경찰 기자의 현장 지휘관인 ‘시경캡’ 고참 기자의 몫이다. 유능한 시경캡은 후배 기자의 사소한 현장 보고도 허투루 듣지 않고 꼼꼼히 취합해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취재 지시를 내린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신속히 부장, 국장에게 보고하고 타 부서와 협조해 대응한다.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베테랑 기자로 책임질 것이 많아지는 ‘고달픈 자리’다. 일개 신문사도 이런데,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느껴야 할 책임과 긴장도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 10배, 100배가 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안 된다. 돌아가라” “도와주세요. 제발!”이라고 외치는 30대 초반 경찰관의 모습을 누군가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다. 7년 차 경찰인 김 경사는 시비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 경찰관 2명과 함께 출동했다가 인근의 압사 현장을 인지하고 즉시 인파 통제와 구조에 나섰다. 소음이 심한 거리에서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자 높은 곳에 올라가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라고 간절히 외치는 모습이었다. “감사하다” “영웅”이라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김 경사의 말은 한결같았다. “혼자서 교통 통제를 했던 것으로 비춰지는데 동료 경찰관과 소방구조대원들도 함께 했고요. 대부분의 시민들이 협조에 잘 따라줬고 도움을 청하니 수십 명이 달려나와 4인 1조로 환자를 이송했어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고요. 그 당연한 조치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제 부족함으로 더 많은 분을 살려내지 못해 유족들께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김 경사는 서둘러 파출소에 들러 확성기를 챙겨갔다면 좀 더 빠르게 인파를 통제하지 않았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지금도 잠을 못 이룬다며 “제 판단이 미흡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울먹였다.
울먹이며 잠 못 이뤄야 할 사람은 김 경사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온 힘을 다해 구조 활동을 벌였던 일선 경찰관과 소방구조대원, 시민들의 사연이 쏟아진다. 실시간 인명 피해 상황을 현장 브리핑한 용산소방서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렸을 정도로 절박했다. 그날 현장에는 김 경사 같은 영웅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의 존재에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위로받는다.
하지만 김 경사 같은 손발이 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봤자 머리 역할을 맡은 윗선의 ‘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 안 하면 몸만 고달프지, 성과는 미흡한 헛수고가 되기 일쑤다. 판단력과 책임감 흐리멍텅한 윗분들이 자리만 누리고 있으면 순식간에 나사 빠진 무능한 조직이 되고 만다. 사전에 인파 통제가 됐더라면 안타까운 참사를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설령 사전 대비를 못했어도 당일 책임자들이 사고 징후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대응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김 경사’들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드러난 ‘경찰 윗분’들의 행적은 황당했다. 위험 상황을 보고받고도 걸어서 10여분 거리를 차 타고 가느라 1시간 늦게 도착한 용산 경찰서장, 윗선 보고도 늦었던 그의 판단력, 사고 신고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 상황실 비우고 자기 사무실에 있다 상황 파악도, 청장 보고도 늦었던 서울경찰청 112 상황관리관, “112 신고 처리 대응이 미흡했다”고 부하들 탓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지방 가서 등산하고 캠핑장에서 잠자느라 문자 보고도, 전화도 못 받은 경찰청장....
애도 기간 매일 분향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150여 명 젊은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것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지 느꼈을 것이다.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새삼 느꼈을 것이다. 당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경찰 간부는 물론이고, 대통령보다도 사고를 늦게 인지한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참사 못지않게 참혹한 기강 해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들은 계속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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