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시집, 일제 발각 피해 마룻바닥 항아리에 보관했다

이형주 기자 2022. 11. 7. 03: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문학자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1922∼1982)은 1940년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윤동주 시인(1917∼1945)을 만났다.

정 선생은 윤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서시 등이 적힌 시집을 받았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추모기념식에서 "정병욱 선생은 한글과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탄압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보존하고 시인을 세상에 알린 벗이자 후배"라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숙사 같이 생활한 정병욱 선생
부모님 집에서 명주보자기에 보존
광양시, 정병욱 가옥서 추모문화제
4일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윤동주 유고 보전 정병욱 가옥에서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및 서거 4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오른쪽 사진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은밀하게 보관된 가옥 마룻바닥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국문학자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1922∼1982)은 1940년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윤동주 시인(1917∼1945)을 만났다. 정 선생은 윤 시인이 창작에 몰두하던 2년 동안 함께 기숙사 생활과 하숙을 같이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벗이 됐다. 윤 시인은 당시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등 시인의 대표작을 창작하던 시기였다.

정 선생은 윤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서시 등이 적힌 시집을 받았다.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윤 시인은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45년 2월 29세 젊은 나이로 순절하게 된다. 정 선생도 태평양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진 1944년 일본군에 끌려가게 됐고, 모친에게 윤 시인의 시집을 잘 보관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그는 “소중한 원고니 꼭 지켜 달라”라는 유언과 같은 말을 모친에게 남겼다. 그의 호 백영(白影)은 윤 시인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 선생의 부모는 당시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양조장을 했다. 부친 정남섭 선생은 경남 남해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끌었고 경남 거제시와 하동군에서 교사로 생활하다 광양에서 양조사업을 시작했다. 모친은 독립운동으로 순절한 윤 시인의 시집이 일제에 발각될까봐 집 마룻바닥을 뜯어 밑에 놓인 항아리에 은밀히 보관했다. 시집은 명주보자기에 곱게 싸여 이렇게 보존됐다. 정 선생은 1945년 광복 이후 구사일생으로 귀환해 1948년 윤 시인의 시 등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時)’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이렇게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윤 시인의 시혼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정 선생은 이후 부산대, 연세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윤 시인의 문학을 소개하고 시비 건립 등 기념사업에 앞장섰다.

광양시는 4일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서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을 기리다’라는 제목으로 탄생 100주년 및 서거 40주기 추모문화제를 가졌다. 가옥은 1925년 건립된 점포형 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한 드문 구조의 건축물이며 윤 시인의 시집을 보관하고 세상에 알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341호로 관리되고 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추모기념식에서 “정병욱 선생은 한글과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탄압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보존하고 시인을 세상에 알린 벗이자 후배”라고 말했다. 이어 이강옥 영남대 명예교수, 서중문 경북대 명예교수, 선생의 동생 정병기 씨의 좌담회도 개최됐다. 광양시는 지난달 12일부터 30일까지 광양예술창고 미디어 A동에서 ‘백영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전시에는 정 선생의 연희전문 학적부, 연희전문 성적표, 졸업증서, 학술원 임명장과 국문학 연구 원고, 강의 노트, 윤 시인과 연희전문 졸업기념 사진 등 자료 32점이 전시됐다.

김미란 광양시 문화예술과장은 “정병욱 선생은 국문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하고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려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이라며 “국어국문학회, 판소리학회를 창립하는 등 민족예술이 자리매김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