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그날 정부…
지방자치 국가행사도 실종, 대선공약 후퇴로 지역 분노…‘따뜻한 정부’ 행동 보여야
2022년 10월 29일을 국민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 젊은이들이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비극적 현실과 마주한 날이다. 아마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이날을 ‘이태원 참사’의 날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후 드러나는 정부의 취약한 안전시스템과 안일한 대응을 곱씹을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책임을 진 정부가 사라진 날로 10월 29일은 기록될 것이다.
10월 29일은 제 10회 지방자치의 날이기도 했다. 지방자치의 날은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이 쟁취한 이른바 87년 헌법에서 자방자치가 부활한 것을 기념해 2012년 국가 지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날 지방발전을 위한 정부는 없었다. 기념식이나 거창한 행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10주년을 맞은 국가 기념일에 대해 홀대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최소한 정부 의지를 보여주는 연례행사까지 축소하거나 미룬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방자치의 날에 즈음해 정부는 해마다 자치분권 균형발전 주간(週間)을 설정해 자치단체와 관련 단체가 자치발전의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방안을 고민했다. 이른바 ‘지역 박람회’로도 불리는 행사이다. 올해는 이 박람회도 반토막 났다. 이번 주 부산에서 열리는 ‘2022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 in 부산’은 10일부터 사흘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정책의 행보는 ‘용두사미’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에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국정과제를 선정할 때만 해도 국민은 지방시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품었다.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실종된 지방자치의 날과 자치분권 균형발전 주간을 보는 국민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자치분권위원회와 균형발전위원회를 합쳐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들여다보면 참담하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합쳐 33명 이내로 구성되는 지방시대위원회에는 정부의 당연직 위원(장관)이 16명이다. 민간위원 17명이라고 하지만 기존의 자치분권위원회와 균형발전위원회에서 이뤄지던 지역의 다양한 요구와 이해를 조정하고 반영하기는 어렵다.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각각 30명 선의 위원을 두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두 위원회는 당시에도 지역의 목소리를 고루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위원 수가 많아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의 장관들이 민간위원들의 목소리를 수용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에서 다수의 민간위원이 숫자로 밀어붙여 이만큼이라도 왔다. 지방시대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지역보다 중앙정부의 주도권이 강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방시대위원회를 독립적 집행기능을 가진 행정위원회가 아니라 대통령 자문기구의 성격으로 묶어 둔 것도 이런 우려를 더 높이고 있다. 정부의 지방시대 약속이 구두선에 불과했다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게 됐다.
무엇보다 지방시대위원회가 법제화되고 공식 출범이 되지 않았는데도,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의 조직과 업무를 사실상 종료시킨 점이다. 현재 이들 두 위원회의 기능은 중단됐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현실에서 지방시대위원회 출범까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예측이 어렵다. 결국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업무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균형발전 과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먼저 공동체의 안정성이다. 수도권 초집중에 따른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초격차는 공동체 내부갈등을 유발한다. 수도권 초집중은 지역민들에게 냉소와 분노를 부른다. ‘원전을 한강에 지어라’는 목소리는 홀대받는 지역민의 지역수탈적 정책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저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어떤 정책도 온전히 국민적 지지 속에서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수도권 초집중으로 인한 비용은 말 할 것도 없다. 단순히 경제 사회 안보적 측면의 비용 상승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전체 국가 시스템에서 지방소멸이 몰고 올 파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이 멈추는 순간 국가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올라간다. 지역의 적정한 규모가 무너지면 시민생활 보장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물론 사회복지시스템 등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는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지혜롭고 따뜻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권한을 쥔 공직자는 따뜻해야 할 의무가 있다. 10월 29일 대한민국에 그런 정부는 없었다.
손균근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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