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너덜겅과 삶의 아이러니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산세를 따라 백무동 한신계곡을 내려오다 보면 너덜겅을 만날 수 있다. 너덜겅 밑자락에는 너덜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다음과 같은 푯말이 보인다. ‘이 많은 돌을 도대체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요? 많은 돌이 깔린 산비탈을 ‘너덜겅’ 또는 ‘너덜지대’라고 부릅니다. 너덜겅은 먼 옛날 지구에 빙하기가 닥치고, 우리나라도 아주 추웠던 때에 절벽이나 바위가 풍화되면서 떨어져 나간 돌들이 산비탈에 쌓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너덜겅에는 빈틈이 많아 박쥐 족제비 뱀 등이 보금자리로 이용합니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과 하동군,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제1의 명산이다. 지리산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소설가 조정래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쓴 대하 역사소설 ‘태백산맥’이다. 이 소설에는 광복과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으로 이어지는 격동기 우리 민족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거에 나는 10권이나 되는 책을 밤을 새워가며 3일 만에 읽으면서 그 시절을 가슴으로 새기며 울었었다. 이러한 독서체험은 민족의 명산인 지리산을 아주 가깝게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지리산 산행을 하면서 내가 유독 너덜겅에 마음이 붙잡힌 것도 이러한 독서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묘사하고 있는 시적인 문장 하나를 소개해 본다. ‘노고단이 장만해 놓은 하늘은 사람의 눈을 감당해 낼 수 없도록 넓고도 넓었다. 그 서쪽을 물들인 휘장만으로는 모자라는 것인지 해는 무슨 큰 깃털들처럼 옆으로 뻗친 구름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허물어져 내리는 것은 돌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산자락에 걸쳐져 있던 구름도 한순간 허물어져서 비가 되고 안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에는 너덜겅과 유사한 것들이 많이 있다. 너덜겅은 지리산뿐만 아니라 광주의 무등산 등 전국의 여러 산에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산과 무등산의 너덜겅에 마음이 가는 것은 그들 산이 품고 있는 역사적 상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위가 온갖 풍파를 겪는 과정에서 균열 때문에 떨어져 나간 너덜겅 돌덩이들은 그 산의 아픔이자 고통의 흔적이다. 극심한 고통을 겪어본 자만이 타자의 고통을 보듬을 줄 안다. 그래서 그런지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린 바위 조각들이 제 몸에 틈을 내어 박쥐나 족제비, 뱀 등 많은 야생의 생명체를 품고 자라게 하는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거대한 산을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바위들보다 한순간 속절없이 허물어져 내린 것들이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아이러니 속에 삶의 신비가 있다.
단단한 바위는 스스로는 완벽할지는 몰라도 약한 것들을 수용하지는 못한다. 이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빈틈이 많은 사람일수록 상대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상처 크기만큼 무너져 내린 그 안에서 새롭게 발산되는 그 힘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픈 것이 꼭 나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프면서 끊임없이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너덜겅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들 너덜겅에는 힘든 시간을 건너온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 풍파를 겪는다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아픔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럴 때 마음은 신기하게도 아픈 것 쪽을 향한다. 아픔을 견디고 다스리다 보면 마음에도 너덜겅이 생겨 내 안에 품을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소설 ‘태백산맥’도 일종의 너덜겅이다. 내 청춘의 한 자락에서 이 거대한 너덜겅이 내게 전해준 전언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생명의 숨소리이자 고고한 역사 속의 여백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박재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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