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폐지, 과학기술 경쟁력 높이는 계기 삼아야
지난 10월 28일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수 연구자 확보에 큰 걸림돌이었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연구기관에 대해 우선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블라인드 채용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주장해 왔던 한 사람으로서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소식이었다. 그동안 국가 공공 부문에 속한 정부 출연 연구원에서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인해 인재 확보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기관 경쟁력 유지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번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인재 확보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연구 현장의 큰 어려움을 읽은 대통령의 결심을 크게 환영한다.
2017년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공공기관 채용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고 공정성을 높이고자 했던 취지는 깊이 공감한다. 출신 지역, 가족 사항, 성별과 같은 실력과 무관한 평가 기준으로 인해 차별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원자의 학력, 출신 학교, 연수 이력, 추천서 등 지원자의 연구 역량과 배경, 품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조차 블라인드로 처리한 상태에서 인재를 구분해 내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능했을까? 같은 반도체를 연구해도 A대학, B대학, C연구소의 장점 분야와 거기서 익혔을 암묵지는 매우 다르다. 게다가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학업 기간 동안 애써 노력한 결과물이자 자신의 자산인 학력 등의 기본 역량조차 채용 과정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과연 이것이 공정한 평가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적용되는 동안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는 신규 연구 인력의 세부 전공과 직무의 불일치로 인해 연구 수행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섬유공학 부문에 금속공학을 전공한 인력이 채용되기도 했고, 플라즈마 개발 연구에 플라즈마 장치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력이 채용되어 애로를 겪었다. 게다가 ‘가’급 국가시설인 연구원에 외국 국적자가 뽑혔다가 최종 불합격 처리되는 일도 발생했다. 이는 블라인드 채용이 ‘연구개발 업(業)의 특성’보다는 ‘과정의 공정성’만을 강조하는 형식 논리로 운영됨으로써, 채용의 근본 목적은 왜곡되고 오히려 비효율과 역차별의 비합리적 구조로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선진국의 어느 연구기관도 블라인드 채용이 시행되는 곳은 없다. 오히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우수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채용한다. 지원자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연구를 했는지는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되고, 연구 역량과 인성 평가를 위한 피어 리뷰(동료 평가)도 여러 단계에 걸쳐서 매우 세심하게 진행된다.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연구실은 우수한 연구 인력의 유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결국 조직에서는 인재 확보에 집중하게 되고, 지원자들은 우수 인재로 뽑혀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학업 기간부터 최선을 다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 블라인드 채용 폐지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국가 전략 기술 육성 방안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첨단 과학기술과 미래 핵심 전략 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첫걸음은 우수 인력 확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은 유지하되, 전문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채용 제도를 확립하고,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본 책무에 보다 충실하도록 역할과 책임을 다해 나가야 한다.
연구를 할 때도 더 멀리,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된 전파망원경과 전자현미경을 사용하듯, 우리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가리게 하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선명한 시야로 보물 같은 인재를 찾아내어 더 큰 세계적 인재로 키워내는 것이 현명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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