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국가 없는 사람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국가의 부재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다. 정치학자인 나는 이런 물음에 민감하다. 국가를 부름이, 안전과 보호에 대한 요구가 치안국가·감시국가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걱정도 한다. 안전과 보호는 민중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우파 포퓰리즘 정치는 그런 요구를 낚아채어 민중의 안전을 민중에 대한 치안과 통제로, 시민의 보호를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배타주의와 혐오 선동으로 변질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날 우리에게 국가가 있었느냐는 물음은 지금까지 대체 어떤 국가가 있었으며, 우리가 원하는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국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물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나라 사람들에게 국가란 너무 오랫동안 악몽이었다. 나도 ‘좋은 국가’를 가졌던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 국가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너무 가까이, 너무 자주, 너무 도처에서 출현하며 겁을 줬다. 그런 국가도 변했다. 한류와 K팝을 거치면서 국가는 아이돌이 되고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껍데기가 되어갔다. 우리 세대의 국가가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지금 청년 세대에게 국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이다. 통치 권력의 성격은 ‘죽이는’ 권력에서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어떤 국가에서나 많이 죽었지만 일상화된 폭력과 무차별적 대중학살은 후자에서 더 심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 신자유주의 지배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각자 보험을 들고, 각자 질병과 사고, 노후에 대비하고, 각자 살아남도록 하려면, 국가가 그런 역할을 도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치안은 시장을 위해 작동하면 되는 것이고, 국가는 자본에 대한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누구의 국가인가를 물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해체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사회 공공성 파괴의 결과다. 오늘날 국가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같은 보수정치세력에는 권력을 차지하면 공로자들에게 한 자리씩 나눠주고 제 식솔 챙겨줄 수 있는 전리품에 지나지 않고, 기업인들에겐 뜯어먹을 공공사업 발주기관 이상이 아니다. 국가의 부재는 국가 사유화의 결과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를 목도하면서 알랭 바디우는 이 참극에 깃든 ‘오래된 병’을 고찰했다. 그는 글로벌 자본이 주권국가를 집어삼키며 사유화하는 양상을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로 설명한다. 첫째, 유럽과 북미 등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정상국가들에서는 자본의 대리자들이 선출직·비선출직 등 정부를 점령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합법적으로 국정에 개입한다. 둘째,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불량국가들의 경우다. 자본은 이런 불량국가도 선호하는데, 부패한 관료들을 매수하기도 좋고, 멍텅구리 정치지도자를 세워놓고 나라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자본은 적극적으로 국가 자체를 붕괴시켜버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무주공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위 세 가지 경우 모두에서 ‘국가 없는 사람들’이 대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는 ‘내부 난민’이다. 내부 난민은 자국 안에서 국제법상의 난민 지위조차 없이 난민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재조직한 이래로 북반구 국가의 내부에서도 대거 발생하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영국 노동자는 자신의 시민권과 생사여탈권이 국가가 아닌 ‘보험회사(금융자본)’에 달려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플 때도, 죽을 때도 국가는 없었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금융업자나 용역업자를 보낸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가 되는 시간이 무섭다. 슬픔과 분노, 죄책감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 참극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쳐보려 노력한다. 체제의 폭력은 우연히 죽은 자와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을 가르고, 그 우연성은 살아남은 자들도 항구적인 불안 속에 몰아넣는다. 사건 자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함께, 이번에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직시했으면 한다. 우리가 왜 국가 없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무고한 이들의 죽음은 그것을 해명하는 우리의 사유와 실천을 통해서만 무화되지 않고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동료 시민으로서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고, 우리가 정치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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