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정의 심리처방] 때론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2022. 11.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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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의 생존자 M씨.

이럴 때 나는 과연 누구에게 상한 감정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을까?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면 그들이 해주는 위로의 말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신에게 쏟아내야 하는 걸까? 미국 9·11 테러, 대한민국 세월호 사건. 지금은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며 살게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충격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가끔은 요란한 말보다 깊은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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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트라우마 경험은 각기 달라
'좋아질 거야' 등 섣부른 위로 말은 금물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 M씨. 그가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 그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고 저는 왜 그 친구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걸까요? 그날 희생자 얼굴들이 자꾸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상담하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때로는 섣부른 위로보다 침묵이 나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퉁이마다 진짜 예상치 못한 일이 늘 기다리고 있다. 마치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내 잘못이 아닌데도 뒤에서 차량이 덮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건들이 생길 때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누구에게 사과받아야 하는 것일까? 가족 중에 자살자가 나오거나, 젊은 나이에 암 말기 판정을 받거나, 믿었던 배우자의 외도를 알았거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험에 실패하거나, 하루아침에 투자한 돈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럴 때 나는 과연 누구에게 상한 감정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을까?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면 그들이 해주는 위로의 말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신에게 쏟아내야 하는 걸까? 미국 9·11 테러, 대한민국 세월호 사건…. 지금은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유가족뿐 아니라 생존자와 이를 목격한 시민 그리고 내내 생중계로 보고 들은 나라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앞으로는 제2의 팬데믹이 우울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정신적 외상은 그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SNS 등을 통해 현장에서 촬영한 참사 영상을 접했다가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생기는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이 ‘재경험(re-experience)’이다. 이들은 사람이 밀집한 곳에 가면 공포심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공황발작같이 숨쉬기조차 힘들어한다. 또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분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 등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신체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이들의 70%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한다. 하지만 일부는 6개월 이상 지속되며 좋았다 나빠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특별히 이전에 우울증 및 공황장애·수면장애가 있었거나, 과도한 감정의 반응이 생기거나, 술에 의존하거나,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많았던 사람은 이러한 트라우마가 기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과도하게 감정을 억제하고 사람들을 오랜 기간 멀리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어렵다. 이때는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등의 약물 치료와 함께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주위에서도 ‘이 상황을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든지 ‘곧 좋아질 거예요’라는 말은 삼가는 것이 좋다. 상투적인 위로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트라우마나 상실을 경험할 때 다른 반응일 수밖에 없는데 섣부른 위로 또는 판단은 오히려 상처가 된다. 아직 우리는 트라우마에 적응하는 단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어떤 단계를 거쳐서 회복될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며 살게 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충격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각자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 되며, 비교의 대상도 아니다. 가끔은 요란한 말보다 깊은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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