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안전한 일상의 근간은
작은 일에도 보행자들 일일이 안내
비효율적·불편하지만 ‘안전’의 발판
우리도 ‘인재’ 막을 대응 체계 필요
도쿄의 집 앞 골목길에서 하수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0m가 조금 넘어 보이는 골목길의 네다섯 곳 지점에서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장비를 집어넣어 작업을 하는데 주변엔 보행자를 안내하는 한두 사람이 항상 있다. 야간작업이 아니고, 작업 지점엔 항상 안내판, 보호펜스를 세워 둔다. 두세 명 정도가 오갈 보행 공간은 확보한 상태인지라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들은 보행자들에게 손짓으로 길을 안내하거나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다. 길이 뻔히 보이고, 작업 규모도 크지 않은 데다 불편한 것도 특별히 없어 ‘뭘 이렇게까지…’ 싶어질 때가 있다. 골목길 양쪽 끝에 한두 명씩 배치해 공사가 있다는 걸 알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비효율적이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일본의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장면들을 두고 비효율, 불편, 요란스러움부터 떠올리는 태도를 요즘 곱씹어 보고 있다. 과해 보이는 조심스러움이 효율을 해치고, 비용을 높이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은 여전하지만 그런 생각이 앞설 때 사고 예방을 위한 만반의 조치와 대비는 성가신 것으로 치부되어 후순위로 밀려날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형사고의 불씨가 이렇게 커진다. 많은 희생자를 낳는 참사가 거의 예외 없이 인재(人災)로 판명되는 건 그래서다. 무리한 화물 선적 등이 지적된 세월호 참사, 내부 철골과 기둥을 고의로 빼낸 부실공사가 원인이 된 삼풍백화점 붕괴 등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처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본이라고 안전의식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철저하게 관철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안전불감을 목격할 때도 있다.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본의 조심스러움이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근간이 아닌지, 지금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 할 것은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는 충분하다. 특히 안전을 위한 규칙을 만들고, 필요할 땐 적절한 통제를 가하고, 사고를 예방해야 할 의무가 있는 당국, 운영자, 사업주 등의 적극적인 자세에 눈길이 간다. 여러 명을 배치해 집 앞 하수도 공사 현장 보행, 에스컬레이터 고장을 안내하는 것처럼 말이다. 얼핏 보면 비효율일 수 있다. 세심하게 대비하고, 일일이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사전 조치, 적극적 대응이 궁극적으로는 한 사회의 효율, 편리를 이끈다.
또다시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꽃 같은 생명들이 상상도 못 했던 일로 스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빗발치는 신고에도 사실상 무반응이었던 경찰에 몹시 화가 난다. 정부 내 보고, 대응 체계는 엉망진창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대형참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무력감마저 든다. 그래도 재발을 막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게 다시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충심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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