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피지 못한 책임 [삶과 문화]

2022. 11. 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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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문득 천장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지? 동행했던 사람이 그 얘기를 듣더니 괜한 걱정이란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문제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이기도 하고, 그렇게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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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남겨진 메시지. 연합뉴스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문득 천장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지? 동행했던 사람이 그 얘기를 듣더니 괜한 걱정이란다. 쇠로 만든 케이블이 얼마나 튼튼한데 쉽게 끊어지겠냐는 거다. 당연히 그 말이 맞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은 예상되는 무게를 견디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튼튼하지만 만에 하나 케이블이 끊어질 경우에 대비해서 안전 브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즉, 케이블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이 브레이크가 작동해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레일에 딱 고정되어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의 안전과 관련된 물건이나 건물을 설계할 때 이렇게 이중의 안전장치를 넣는 것을 '페일 세이프 설계'라고 부른다. '페일(fail)'이 '실패하다, 문제가 발생하다'라는 뜻이니 '문제가 발생해도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의미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담긴 철학은 가볍지 않다.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이나 건물에 아무리 대단한 기술과 훌륭한 재료를 사용했다 해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혹은 심지어 기계가 하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문제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이기도 하고, 그렇게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페일 세이프' 설계 사상에 바탕해서 큰 건물 복도의 중간중간에는 화재로 전원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내려오는 방화셔터가 설치되어 있고, 무거운 짐들을 실어 나르는 공항의 카트는 손으로 핸들을 꼭 잡아야만 굴러가고 만약 손을 놓치면 곧장 바퀴가 정지되게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이런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들에는 비용이 들어가고 비효율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런 비용과 비효율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해진다. 안전한 카트를 도입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방화셔터 아래에 함부로 짐을 쌓지 못하도록 막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살핌'을 통해 '문제'는 '안전'의 범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작업효율에 방해가 된다고 끼임방지 뚜껑과 자동 멈춤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제빵회사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한 비극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전국민이 사용하는 통신 앱이 화재에 대비한 데이터 백업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초래된 통신 재앙은 아직도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잇따른 사고에도 우린 여전히 겸손하고, 주의하고, 살펴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또 한번 귀한 목숨들이 어이없이 사라져 간 거대한 참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안전이란 그곳에 있는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살핌'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너무나 커다란 비극 앞에서 우린 그런 '살핌'에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죄스런 마음이 든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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