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부산엔 또 다른 형제복지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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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부산에 또다른 형제복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1960, 70년대 부산에서는 부랑아와 노숙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수용하는 시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중구 일대에서 신문을 팔았는데 부산데파트 앞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에게 '돈벌이를 소개해주겠다'며 끌려갔는데 그곳이 재생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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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뭐라노 애독자 여러분. 전 이번 인사로 디지털부문장을 맡게 된 최현진 부국장입니다. 전임 이노성 국장은 편집국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앞으로 조언 많이 부탁 드립니다.
부산에 또다른 형제복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1960, 70년대 부산에서는 부랑아와 노숙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수용하는 시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재생원과 영화숙도 이런 시설 중 하나입니다. 국제신문 메가시티사회부 신심범 기자가 재생원과 영화숙에서도 인권 유린이 있었다는 피해자를 만나 이를 보도했습니다. 관련자는 2명인데 피해를 봤다는 증언자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피해자 손석주(59) 씨는 “철창 방에 가두고 군대식으로 관리했다. 구타·가혹 행위에 죽은 애들도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중구 일대에서 신문을 팔았는데 부산데파트 앞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에게 ‘돈벌이를 소개해주겠다’며 끌려갔는데 그곳이 재생원이었다고 합니다. 기와지붕 모양의 단층 건물마다 10평이 채 안 되는 철창이 딸린 방이 있었습니다. ‘소대’로 불린 이 방에는 열 살 아이부터 쉰 살이 넘는 성인까지 마구잡이로 수용됐다고 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잤고 방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났습니다.
같은 수용자이면서 덩치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소위 중대·소대·분대장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방망이로 수용자를 마구 때렸다고 합니다. 자기도 오른팔을 맞아 부러졌는데 지금도 팔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강냉이죽과 보리밥 정도의 부실한 식사와 가혹행위에 숨진 원생도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죽은 아이를 가마니에 덮은 채 야산으로 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합니다. 재생원과 영화숙에 갇힌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그는 기억했습니다.
당시 부산은 피란수도로 도시빈민이 넘쳐나 이런 시설이 많았습니다. 시는 이들을 사회와 분리해야 할 존재로 여겼고 수용인원이 많을수록 지원금도 많았습니다. 형제복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을 확장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속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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