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맛’ 위한 요리법 존재하듯…‘제 효능’ 위한 약재별 가공법 달라[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얼마 전 요리 강습에서 고추장찌개 만드는 법을 배울 때였다. 돼지고기, 말린 애호박, 대파 등으로 기본 재료를, 그리고 고추장과 간장, 설탕 등으로 양념장을 준비했다. 재료들을 볶으면서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고추장찌개를 끓일 때는 말이죠. 양념을 미리 재료와 같이 볶은 다음에 물을 넣어주셔야 해요. 고추장을 미리 넣게 되면 모든 요리가 떡볶이가 됩니다. 재료가 똑같아도 가공 방법, 순서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안내대로 했더니 정말 확실히 맛이 달라졌다. 한약을 처방하는 과정도 요리와 비슷하다. 각각의 한약재를 기본 재료로 본다면 어떤 한약재는 날것을, 어떤 한약재는 말린 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각각의 한약재를 볶거나 찌거나 발효시킨다. 이러한 한약재의 가공 과정을 수치(修治) 또는 포제(炮劑)라고 한다.
가공 과정을 거치면 약효가 높아지거나 독성이 완화된다. 대표적인 예가 홍삼과 부자다. 홍삼은 인삼을 찌는 형태로 가공한 것이다. 인삼을 찌면 붉은색을 띤 홍삼이 된다. 색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삼이 가진 고유의 쓴 향이 사라지고, 유효 성분이 변화한다.
한약재 중에서 독이 있는 약으로 유명한 부자도 마찬가지다. 부자를 날것으로 쓰면 독성이 강하지만, 소금물에 담가서 말리거나 끓인 후 건조하면 독성을 줄일 수 있다.
한약재를 달일 때도 약재별로 투입하는 순서가 다르다. 이와 관련해 선전(先煎), 후하(後下)라는 표현을 쓰는데, 먼저 넣는 것과 나중에 넣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용어다. 잘 우러나지 않는 한약재는 먼저 투입하고, 쉽게 우러나고 열에 의해 약효 성분이 분해되기 쉬운 한약재는 나중에 투입한다.
박하(薄荷), 계피(桂皮)같이 향이 많은 약재들은 약효가 쉽게 날아가고, 분해되기 쉽기 때문에 항상 나중에 투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요리에서 깻잎과 파를 맨 나중에 넣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요리에서는 고유의 향미를 지키기 위해, 약 처방에선 효능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수치와 포제는 궁극적으로 약재의 유효 성분만을 최대한 적절하게 추출하기 위한 고전적인 가공 방법인 것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건강기능식품 등 한약재를 활용한 완제품 시장이 확대되면서 기존 방법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공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나오고 있다. 각 한의원에서는 개별 증상에 따른 처방이 기존 방법으로 충분하지만, 기업의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방식들이 요구된다.
최근 건강기능식품 업계를 중심으로 한약재의 추출을 위해 응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방법들로는 초음파, 마이크로웨이브, 고전압, 플라스마, 초임계 기술 등이 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동일한 약재에서 최대한의 유효 성분을 뽑아내고자 하는 수율 증대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식품업계가 밀키트 시장 확대 속에서 맛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듯이, 한약업계에서는 완제품 시장의 확대 속에서 효능을 지켜내는 것을 목표로 한 가공 기술의 개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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