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현장 커피·비닐·용접기…신이 도운 것 같았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신이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놓기라도 한 건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221시간 동안 지하 190m에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박정하씨(62·사진)는 6일 경향신문과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사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갑자기 토사가 쏟아지면서 발생한 매몰 사고 이후의 모든 상황이 기적 같았다고 회상했다. 작업조장인 그는 조원인 박모씨(56)와 고립돼 있었다.
이들은 작업장소가 사고 발생 4일 전에 바뀌면서 새로운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으로 광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에 작업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물품들이 ‘기적의 생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조장 박씨는 “막장을 살펴보니 얼마 전 가져다 놓은 커다란 나무판자와 톱, 산소용접기 등이 있었다”며 “톱으로 나무를 잘라 기둥을 만들고 비닐을 둘러 움막(텐트)부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갱도 천장에서 지하수가 조금씩 떨어져 옷이 젖으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바닥에는 패널을 깔아 몸이 젖지 않게 했다. 갱도 안은 그리 춥지 않았지만, 구조대가 언제 올지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체온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쓴 이유다.
그는 움막을 둘러칠 비닐을 발견했을 당시를 ‘믿지 못할 순간’이라고 했다. 새 막장에 비닐을 가져다 놓은 적이 없는데, 누군가 쓰다 남은 비닐을 놓아둔 것이다. 갱도 안 비닐은 광부들이 옷이 젖었을 때 바람을 막는 용도로 사용한다. 비닐을 친 뒤 모닥불을 이용해 젖은 옷을 말리는 방식이다.
“죽을 준비 안 했다”며 여유…“한순간도 희망 잃지 않았다”
박정하씨가 전한 매몰 이후 ‘221시간의 사투’
막장에 있던 비닐로 움막 치고, 용접기로 젖은 나무 불피워
평소 좋아했던 믹스커피, 열량 상당해 생존에 결정적 역할
안전등 꺼지고 절망의 순간, ‘펑’ 소리와 함께 구조대 나타나
이는 베테랑 광부의 지혜와 경험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갱도 붕괴 사고 때엔 수분 공급이 원활하고 공기가 흐르는 넓은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박씨 등이 발견된 장소도 지하수가 흐르는 등 이른바 생존 매뉴얼과 같은 조건이었다.
방장석 중앙119구조본부 충청·강원 특수구조대 구조팀장은 “(노동자가 발견된 공간이) 마치 여러 갱도가 만나는 ‘인터체인지’ 같았다.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았던 것”이라며 “비닐을 치고 불을 때고 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작업을 위해 미리 가져다둔 산소용접기도 ‘구세주’ 역할을 했다. 박씨 등은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갱도 안 나무들이 모두 물에 젖어 있어 불을 피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산소용접기는 강력한 화력 덕분에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들이 평소 좋아했던 믹스커피는 비상식량이 됐다. 막장에 있던 전기포트의 플라스틱 부분을 떼어내고 물을 담아 모닥불에 올려 커피를 끓여 마셨다. 믹스커피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지하수를 받아먹으면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조장 박씨는 “사고 당일 마침 믹스커피를 30봉 가까이 들고 갔다”며 “평소 커피를 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것도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방종효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도 믹스커피가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 믹스커피에는 설탕과 프림 등이 있어 열량이 상당하다고 의료진은 설명했다.
두 광부에 대한 구조가 3~4일만 더 지연됐어도 박씨 등의 생명이 위독해질 수준이어서 ‘기적의 생환’이란 말 대신 ‘광부의 비극’이란 말이 나돌 뻔했다. 방 과장은 구조당시인 지난 4일 “노동자들이 근육이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이 진행되기 시작한 상태였다”며 “조금만 늦었어도 위독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단 한순간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도중 “죽어야 할 준비를 안 했다”면서 농담까지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그는 “죽더라도 (회사에) 인수인계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면서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조원 박씨와 함께 괭이를 들고 막혀 있는 암석을 10m가량 파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원 박씨는 광부 일을 한 지 1년남짓 됐지만 사고가 난 광산으로 온 지 4일밖에 안 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생으로 여기는 조원 박씨에게 끊임없이 힘을 불어넣어줬다. 그는 “동생에게 광산에는 이런 일(매몰사고)이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일어나는 일”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라. 우리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되풀이해줬다.
그런 박씨도 구조 직전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는 “구조되기 바로 직전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안전모에 달린 안전등 배터리가 소모되며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면서다.
그는 “텐트에 장작 2개비를 올려놓고 처음으로 동생에게 ‘희망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그렇게 동생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고 했다.
절망이 찾아온 그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동굴 반대편에서 환한 불빛이 보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광부들을 구조하기 위해 갱도를 파내던 구조대가 그들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저 멀리서 구조하러 들어온 동료 광부가 ‘형님’하고 달려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에) 모두가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 11시3분. 기적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박씨는 사고 당일 함께 작업했던 다른 노동자 5명의 생존 사실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사고가 난 지난달 26일 이 광산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는 조장 박씨와 조원 박씨를 포함해 지하 깊이가 각각 다른 갱도에서 작업하던 광부 등 모두 7명이었다. 지하 30m 지점에서 일하던 노동자 2명은 사고 당시 전기가 끊기는 등 이상신호를 감지해 이날 오후 스스로 광산을 탈출했다. 지하 90m 지점에 있던 노동자 3명은 토사에 휩쓸려 내려가 50m 아래에 있는 공간에서 업체 측에 의해 구조됐다.
박씨는 지난 5일 아들에게 ‘이태원 참사’ 발생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신의 생환 소식이 이태원 참사로 우울했던 국민에게 힘이 됐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졌다. 그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한 아연채굴 광산의 제1 수직갱도 지하 46m 지점에서 갑자기 밀려 들어온 토사가 갱도 아래로 쏟아지며 발생했다. 이 토사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갱도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업체 측은 밤샘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한 뒤 14시간이 경과한 지난달 27일에야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이 업체는 지난 8월에도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노동당국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받고 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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