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내뿜는 곳 따로, 고통받는 곳 따로…‘기후정의’를 묻는다[COP27 개막]

김혜리 기자 2022. 11. 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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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피자 나즈 큐레쉬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안에선 회의, 밖에선 시위 COP27 기후정상회의 의장인 사메흐 수크리가 6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위 사진). 활동가들이 COP27 기후정상회의 개막식이 열린 샤름엘셰이크 국제컨벤션센터 건물 입구에서 기후재난 해법을 촉구하는 구호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샤름엘셰이크 | AP·로이터연합뉴스

파키스탄은 지난 8월 역사상 최악의 홍수를 경험했다. 북부 산악지대 빙하가 녹아 인더스강이 불어난 데다 몬순 우기에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국가재난관리청(NDMA) 통계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최소 1696명이 숨졌고, 파키스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3300만명이 수해를 입었다. 또 200만여채의 주택과 시설 등이 파괴됐고, 약 1만3000㎞의 도로가 유실됐다. 당국은 영토에서 물이 전부 빠지려면 앞으로 4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홍수의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되면서 파키스탄에선 “불공평하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가장 취약한 10개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주범국인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연 1000억달러 규모의 기후기금을 지원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기후 불평등’ 논의에 불을 지폈다.

지난여름 파키스탄에 최악의 홍수…국토 30% 물에 잠겨
선진국 ‘기후기금’ 약속 미이행…‘기후 불평등’ 논의 불거져
“우리가 초래 안 한 기후위기, 가장 먼저 겪는 건 불공평”

파키스탄 현지 시민사회단체 ‘인더스 콘솔티움’의 활동가 피자 나즈 큐레쉬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파키스탄의 현실과 선진국 책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금 현지 상황은 어떤가.

“정부에선 이재민 대부분이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처참하다. 여전히 63만명이 캠프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그마저도 텐트 같은 도구가 부족해서 그냥 하늘을 바라보고 잠드는 가족들도 많은 실정이다. 아직 물에 잠긴 지역들도 꽤 있다. 신드주의 상하르 지역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고 30분이나 이동해야 했다.”

- 남쪽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들었는데.

“남쪽에 있는 발루치스탄주, 신드주, 펀자브주가 이번 홍수로 큰 피해를 당했다. 특히 인더스강 하류가 바다랑 만나는 신드주의 피해가 컸다. 29개 지역 중 24곳이 이번 물난리로 타격을 입었다. 신드주는 원래 건조한 지역이라 홍수에 잘 대비돼 있지 않다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또 신드주는 카라치 같은 대도시 말고는 지역의 80%가량이 시골인데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농민들이 입을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보나.

“그렇다. 140만에이커에 달하는 농지의 작물이 100% 다 망가졌다. 목화랑 사탕수수를 생산해서 수출하는 지역인데 이게 다 물에 잠겨버렸으니 주민들이 돈을 벌 수단이 없어졌다.”

- 물난리가 난 후 정부나 국제기구의 대응은 어땠다고 보나.

“폭우로 강물이 넘쳐 처음 물난리가 났을 때 주요 매체에서 이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파키스탄 정치가 불안정한 상황이라 정치 뉴스가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국제기구의 대응도 아주 미흡했다. 지금 사람들은 옷과 음식을 구호품에 의존하고 있고, 캠프 상황도 열악해서 여자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깨끗한 물이 부족해서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한동안 고여 있던 물이다 보니 수인성 질병도 번지고 있다. 뎅기열이랑 말라리아, 설사도 흔한 질병이 됐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는 몇 안 된다.”

- 파키스탄은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례적인 기후 현상으로 고통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10개국 중 하나다. 그래서 파키스탄 정부와 시민사회는 그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북반구 선진국들, 특히 온실가스 배출 1~10위 국가들에 파키스탄의 재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파키스탄 입장에선 기후금융 지원 말고 부채 탕감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던데.

“국제통화기금(IMF)의 확대금융지원(EFF) 프로그램은 파키스탄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었지만, IMF가 세수 확대 정책을 요구하면서 파키스탄 정부는 연료 보조금 지급을 축소했다. 8월22일 물난리가 났는데 9월1일부터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집도 잃고 전기도 못 쓰게 된 상황에서 수천루피로 불어난 전기료 청구서를 받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홍수 피해 복구에 드는 비용은 약 300억달러로 추산된다. 세계은행(WB)은 피해 복구를 위해 20억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파키스탄은 기존의 대외 부채 1302억달러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건 ‘기후정의’의 뜻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의 주범들이 앞서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다. 우리가 초래하지도 않은 기후위기의 악영향을 우리가 가장 먼저 겪게 되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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