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걷는 순례자, 인간 실존을 묻다

이강은 2022. 11. 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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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에 이르는 길이다.

연극은 2020년이 지난 뒤 언젠가, 오호츠크 해상 기후탐사선에 근무하는 기후연구원 AA(이은정)와 BB(정슬기)가 위성 레이더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 방향으로 무한히 걷는 '그'(전선우)를 발견하고 지켜보면서 이뤄지는 대화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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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에 이르는 길이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거나 살아갈 방향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날아와 이 길을 걷는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 쪽인 극동 시베리아 방향으로 걸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던 낯선 길로 왜 가는 것일까.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공연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 제작한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을 담은 부조리극이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은 정진새가 희곡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이 작품은 지난달 20∼23일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이어 이달 2일부터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연극은 2020년이 지난 뒤 언젠가, 오호츠크 해상 기후탐사선에 근무하는 기후연구원 AA(이은정)와 BB(정슬기)가 위성 레이더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반대 방향으로 무한히 걷는 ‘그’(전선우)를 발견하고 지켜보면서 이뤄지는 대화로 진행된다. 극 중에선, 산티아고 순례길을 캐릭터가 대신해 걷는 온라인 관광 상품이 유행한다. 순례길을 완주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산티아고에서 반대 쪽으로 향하는 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캐릭터의 주인공이 실제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을 안 뒤 열광한다. ‘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급기야 ‘그’가 걷는 코스를 구현한 ‘시베리아 순례길’이 온라인 게임으로 생겨난다. 연극은 정반대 순례길로 외로이 걸어가는 ‘그’와 ‘그’의 행로를 추적하는 두 연구원의 잡다하거나 무의미한 이야기를 통해 기후위기와 팬데믹 시대 인류가 직면한 실존 문제에 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부조리극이라 서사나 흐름이 불분명하고 다소 난해하다. ‘세상이 깜빡거리는데 분명한 건 하나도 없다’는 대사처럼.

정진새 연출은 지난 2일 국립극단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언어나 상황이 따로 노는 부조리극을 쓰게 됐는데, 의도적으로 흩어놨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작품은 휴머니즘의 재확인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완성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전이 잦아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과 관련, 정 연출은 “50회 이상 암전이 진행된다. 깜박임 효과를 위해 채택했는데 흐름을 방해하고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며 “하지만 흐릿하고 희미한, 깜박이는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동쪽 끝에 다다른 순례자의 독백(‘죽고 싶진 않지만, 살아있다는 것의 허전함을 그만 느끼고 싶다’)은 여운이 짙다.

이강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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