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의 깊은 분단

한겨레 2022. 11.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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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지난 9월27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반대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펼침막에는 ‘죽어서도 세금을 헛되게 쓴다, 아베 국장 반대’라고 적혀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세계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느 곳이나 분단이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방치되면서 격차와 빈곤이 커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최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문제가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부유층이나 기업을 상대로 세금을 걷고, 약자에게 재분배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도 그런 정책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취임한 뒤 분배를 강조하며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웠지만 이 외침은 들리지 않게 됐다. 최근엔 국민에게 주식이나 투자신탁을 살 것을 호소하는 ‘자산소득 배증’이라는 슬로건을 주장하고 있다. 밑천이 없는 서민들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경제적 분단뿐만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갈라져 대립과 긴장이 심화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 그 전형이다. 미국에서는 낙태와 동성애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를 증폭시키면서 균열이 깊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진 것은 부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리며 민주주의 규칙을 파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죄가 무겁다. 곧 치러질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 결과에 따라 미국 정치가 마비 상태가 될 우려가 있다.

일본에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에 사회 분단이 증폭됐다. 전통이나 내셔널리즘이 대립점이 됐다. 아베 전 총리는 전후 만들어진 헌법 개정을 비롯해 전통 회귀를 주장했다. 외교에 대해서는 아시아 인근 국가들과 대결 자세를 보였다. 인구 감소, 경제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내셔널리즘이나 전통을 과시하는 정치인에게 기대를 갖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말하는 전통이 정말 일본에서 이어져온 문화나 생활습관인지 분명하지 않다. 예컨대 보수적 정치인들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부부가 다른 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이 가능한 제도)에 대해 일본의 전통적 가족 제도를 무너뜨린다며 반대한다. 일본에서 일반 서민들이 성을 갖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부터다. 보수 정치인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맞지 않는 이념·가치관·남녀평등·개인주의 등을 두고 전통에 위배된다거나, 때때로 공산주의적이라고 말하며 비난해왔다. 현재 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교는 이런 경직된 생각을 교육과 가족 제도에 적용하는 정치 운동을 해오면서 자민당과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아베 전 총리의 권력 사유화 의혹과 국회에서의 허위 답변에는 눈을 감으면서 ‘아베 정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겹친다. 다만 열광적인 아베 전 총리의 지지자만을 편협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아베 전 총리의 비극적 사망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넘어 그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25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추모 연설을 했다. 최장기 정권을 지속한 지도력을 평가하는 동시에 ‘역사의 법정에 영원히 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의 과오에 대해서도 계속 묻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으로 균형 잡힌 연설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베 정치에 반대해왔던 지식인과 시민들이 노다 전 총리의 연설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나는 이런 반응을 보고 설명하기 힘든 어두운 심연에 빠졌다. 나도 아베 전 총리가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의 기본 규칙을 파괴했다고 지속해서 비판을 해왔다. 그러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정치인을 추모하는 데는 상응하는 예절이 있다.

사회의 분단이 확산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면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너진다. 아베 전 총리의 충격적 죽음을 계기로 ‘아베 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도, 비판했던 사람도 논의 방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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