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탈시설은 혁명이다

한겨레 2022. 11.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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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칼럼]모든 탈시설엔 눈물이 녹아 있다. 탈시설 운동은 지역사회에 존재할 권리조차 빼앗긴 이들의 존재 투쟁이고, 그 투쟁이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장애인은 무능하며 그런 이들의 탈시설을 범죄라고 모욕하는 이들에 맞선 그 모든 탈시설은 그래서 혁명이고, 탈시설한 장애인 한명 한명이 모두 혁명가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 과정에서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11월2일 국회 운영위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참고인으로는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시설 직원이 출석했다. 그는 모든 거주인을 자립시키고 시설의 문을 닫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활동을 비난하면서, 의사표현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일에 대해 ‘범죄’라고 말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또 자신이 장애인들에게 했던 배변 처치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자신의 헌신을 강조했다. 가장 취약한 이들을 발가벗겨 그들의 무능함을 보인 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숭고함의 외피를 쓴, 비열한 차별의 얼굴이었다.

요즘 내가 기록하는 사람은 탈시설 운동가 임소연이다. 누군가가 ‘범죄’라고 칭한 그 일을 지난 20여년간 해온 사람이다. 2005년 소연은 한국 최초로 장애인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했다. 소연을 압도한 건 이런 것이었다.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한테만 주스를 안 줘요.” 소연이 다시 물었다. “뭘 안 준다고요?” 그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간식이 나올 때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빵도 주고 주스도 주는데,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줘요.” 소연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남성에게 직원들이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을 때였다. ‘반말’ 정도를 예상했으나 돌아온 답은 이것이었다. “모르겠어요. 20년 동안 한번도 이름을 불려본 적이 없어요.” 현재의 소연이 17년 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내 이름을 불렀다. “은전아, 그런 삶이 상상이 가니?”

그해 겨울 소연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남 영광의 시설에서 만났던 꽃님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나, 나갈랜다. 네가 도와줘야겠다.” 꽃님은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었고 바깥엔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아무런 사회적 환경도 마련되지 않았다. 소연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뭐, 뭐, 뭘 도와요?” 꽃님이 주저 없이 말했다. “일단 집이 있어야지. 나 밥 먹고 화장실 가려면 네가 도와줘야지. 그리고 나 먹고살려면 네가 돈도 줘야지.” 소연은 꽁꽁 얼어붙은 채로 솔직하게 말했다. “언니, 집, 없어요. 나오셔도 누가 도와줄 수도 없어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돈이 나오는데요, 그것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런데도 언니가 나오시겠다면요…” 소연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최선을 다해 알아볼게요.” 꽃님이 생각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달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도 나 나갈랜다.” 길을 걷던 소연은 그 자리에 멈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원해서 이곳에 들어왔습니까?” “외출하고 싶을 때 외출할 수 있습니까?”라고 한국 사회 누구도 묻지 않았던 걸 감히 물었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꽃님은 자신의 삶을 걸고 화답해온 것이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소연은 느꼈다. 현재의 소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참… 운명이었던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을까?”

6개월 뒤 꽃님은 서울에 도착했다. 활동 지원 서비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소연은 꽃님의 활동 지원을 할 사람을 구하느라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를 돌렸다. 그럼에도 공백은 생겼고 그 공백은 꽃님에게 커다란 공포였다. 혼자 있다 불이라도 나면 바로 죽을 것이다. 소연은 “언니, 24시간 다 채워주지 못해 미안해” 하면서 울었다. 꽃님은 “그럼 네가 오늘 자고 가면 안 돼?” 하면서 울었고, 소연은 “언니, 나도 집에 가야지, 만날 같이 잘 순 없잖아” 하면서 울었다. 꽃님이 신경질을 버럭 내며 “네가 나오라고 했잖아!” 하면서 울면 서운해진 소연도 “우리가 다 해줄 수 없다고 했는데 언니가 나왔잖아” 하면서 울었다.

두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우는 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뜨거워진다. 모든 탈시설엔 눈물이 녹아 있다. 탈시설 운동은 지역사회에 존재할 권리조차 빼앗긴 이들의 존재 투쟁이고, 그 투쟁이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장애인은 무능하며 그런 이들의 탈시설을 범죄라고 모욕하는 이들에 맞선 그 모든 탈시설은 그래서 혁명이고, 탈시설한 장애인 한명 한명이 모두 혁명가다. 그 어렵고 대단한 일을 해낸 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소연을 나 역시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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