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한겨레 2022. 11. 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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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을 어떻게 정치와 연결해내는지 묻는 말에 밀란 쿤데라식으로 답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칼을 들고 숨어있던 남자를 만나는 세상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런 말은 왜 하는 것일까.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국을 만들어줄 헌신적인 여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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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서한나 | 보슈(BOSHU) 공동대표·<사랑의 은어> 저자

개인적인 일을 어떻게 정치와 연결해내는지 묻는 말에 밀란 쿤데라식으로 답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칼을 들고 숨어있던 남자를 만나는 세상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종종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남자를 본다. 나는 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국을 끓일 수는 없을까. 저런 말은 왜 하는 것일까. 혼자 있을 때 그는 아마 국 없이도 밥을 먹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국을 만들어줄 헌신적인 여자일 것이다.

지난 9월15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글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는 여성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필자는 성비불균형과 인프라 부족으로 지방 남성 청년이 결혼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부모 세대가 당연하게 이루어왔던 목표는 지방 젊은 세대에게 꿈이 되었다고 쓴다.

지방 여성 청년에게 결혼은 꿈이 아니다. 여성 청년은 결혼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는다.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남성보다 더 많이 갖는다. 여자는 가장이 되려는 남자의 도구일 수 없고, 남자에게 주어지는 배급품도 아니다. 집을 마련했다고 같이 살 여자가 생기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이 글을 읽은 한 독자는 “글 전체에 여자를 물화하는 느낌이 뚝뚝 떨어진다”고 평했다. 문제는 이 글이 남초커뮤니티가 아니라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동 현장을 기록한 필자의 산문집 <쇳밥일지>를 추천하며,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이 시대 청년의 목소리”라고 평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까지 청년과 노동자는 남성으로 대표되어왔다. 남성 노동자 이슈는 청년 노동자 이슈가 되고, 여성 노동자 이슈는 여성 이슈가 되었다. 남성 청년의 현실은 시대상이 되고, 여성 청년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 청년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대전시의 한 토론회에서는 혼자 사는 남성이 청소를 힘들어하는 문제와 혼자 사는 여성이 집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문제를 비슷한 무게로 다뤘다. 오늘날 지역의 2030 여성은 저임금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사회구조에 기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수전 팔루디의 책 <백래시>에는 정신건강 연구자 제럴드 클러먼과 미르나 와이드먼의 연구 결과가 박력 있게 적혀있다. 이들은 여성 우울증에 두 가지 커다란 원인이 있음을 확인했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다. 필자는 논란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이 “구렸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후 유의미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필자의 관점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지방에 사는 여자들이 없고, 있어도 주체가 아니었다. 사회가 지방 청년을 지웠고, 그는 지방 여성 청년을 지웠다.

일부 2030남성이 대통령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환영하던 시기, 대전과 대구, 광주와 서울에서는 비혼 여성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다.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스스로 구원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필자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낡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지역은 낡았으니까, 라고 덧붙였다. 그의 낡음과 무관하게 과거와의 이별은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 안에서 현실은 편집된다. 제 눈에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그중 어떤 장면이 쓸만하다고 생각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는 주관이 작용한다. 자신이 세계의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제 글이 세계를 어디로 이끄는지 모른다면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글과 글에 대한 반응들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 텍스트들은 한국 사회가 무엇에 관대하고 무엇을 수용하지 않는지 드러낸다. 여자는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여우 같은 아내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으로 살기 위해 태어났다. 여기에 논쟁이 필요한가.

※글의 제목은 동명의 드라마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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