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보스턴 마라톤 테러
[한겨레 프리즘][이태원 참사]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탐사기획팀장 겸 소통데스크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체증은 머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쳐도 납득이 되지 않을 때, 머리에서 입까지 고작 한뼘은 풀릴 기약이 없는 정체에 들어선다. 10월29일, 156명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을 설명할 마땅한 언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선 정리부터 필요하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은 돌려보내고 2차로에는 승용차를, 3~4차로에는 대형승합차와 화물차를 달리게 한다. 1차로는 추월 차로로 남긴다. 갓길을 달리는 차량은 단속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도로를 어지럽힌 이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가령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와 같은 말에는 벌점을 매겨 면허를 빼앗아야 한다. 그에게 바랐던 것은 오로지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비상대비’(정부조직법 34조 1항)라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를 불가항력의 천재지변 탓에 발생한 일처럼 둔갑시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떠넘기는 말은 공론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천안함 사건,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깊어진 것은 한순간의 비극 때문이 아니었다. “패잔병”, “해상 교통사고” 등과 같은 규정과 “피해가 벼슬이냐” 같은 말들은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의 트라우마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었다. 그런 공격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참사를 애도하는 수많은 이와 우리 사회에도 상처를 남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사회적 고통을 치유할 채비를 갖출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경로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적지는 분명하다.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세월호 참사 재조사를 앞두고 미국, 일본, 옛 소련 등에서 재난을 연구했던 학자들이 서울에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2013년 4월15일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대응 사례가 소개됐다. 당시 대회에는 2만5천여명이 몰렸다. 폭탄 테러가 발생해 3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부상자 260여명은 모두 살아남았다. 테러 현장에서 활동한 경찰관·소방관·의료진을 심층 인터뷰한 아널드 호윗 하버드대학 교수는 “수년간 보스턴 지역에서 여러 기관이 함께 지역 행사를 운영하며 쌓은 경험이 긴급 상황에서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대부분 경찰·소방·의료 등 응급 서비스 등이 분리돼 있지만, 재난이 벌어지면 긴급 지휘본부가 만들어져 역할을 조정한다. 리더십은 효과적으로 작동했고, 협업 경험은 현장 대처를 원활하게 했다. 부상자들은 사고 지역 인근 8개 외상센터(병원)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이송되어 살아남았다. 테러범은 나흘 만에 체포됐다.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가 서로 다른 차선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때의 미국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밝히는 것은 조사의 영역이다. 시민들의 신고 묵살, 소방과 경찰의 협력 체계 붕괴, 특정 병원에 과도하게 집중된 환자 이송 실패의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112 책임자, 서울 용산경찰서장, 서울지방경찰청장, 경찰청장 중 어느 하나도 제때 보고받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정부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이 과정에서 허위나 조작은 없었는지 살피고 범죄가 적발되면 마땅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우리는 그날의 참사를 설명할 마땅한 언어를 발견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있어야 위로도, 애도도, 치유도 가능하다. 부디 그날이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하길 빈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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