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돈맥경화` 비상] 금융당국 한눈파는 사이에… 제2금융 유동성 위기 `재깍재깍`

유선희 2022. 11. 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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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콜 옵션 미행사 리스크
한화생명도 내년 4월 콜옵션 행사
진에어·이마트24 사모사채 발행
S&P "韓 보험사, 자금조달 악화"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국내 보험사, 카드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신(예금) 기능이 없어 외부자금 조달에 의존해야 하는 사업 특성상 유동성이 일순간 경색된다면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복합 위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국내 제2금융권을 덮치고 있는 양상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와 채권시장에 따르면 최근 한달새 레고랜드 사태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중국 부동산 기업의 채무불이행, 유럽 투자은행 위험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국내 금융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제2금융권 전반에서 유동성이 경색될 조짐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확대 조치에도 시장 불안이 가라앉지 않은 데다 나라밖에서도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과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나오면서 자칫 금융위기가 다시 불거지지 않을까 우려도 나온다.

국내 금융권에선 지난달부터 위기 징후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증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차환 위험에 빠져 비상경영에 들어가는 곳이 늘어나는 데 이어 생명보험사들도 해외에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 미행사 등 상환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신용카드와 캐피털사도 자금조달 창구인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 차질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시장에선 제2 금융권 회사들의 현금과 달러 부족, 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의 채권운용 담당자는 "시장에선 달러 유동성 부족 의심으로까지 번졌다"며 "최근 국내 금융사가 발행한 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많이 오른데다 보험사들의 PF 투자 규모도 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 사정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DS는 기업이나 금융회사, 정부 등 채권 발행 주체의 부도위험에 대한 보장을 거래하는 신용파생상품으로 부도 위험이 높을수록 CDS가 오르게 된다. 해외 시장에서 5년만기 한국물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1월만 해도 19bp(베이시스 포인트, 1bp=0.01%포인트)였으나 지난 3일 현재 75bp로 치솟은 상태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국의 국가 부도 가능성을 예전보다 높게 본다는 뜻이다.

최근 흥국생명이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을 하지 않기로 했고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된 300억원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해외 차환 발행은 금리가 높고 수요는 위축돼 최악의 여건"이라며 "생보사들이 지급여력비율(RBC)이 낮아 조기 상환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추가 금리를 얹어 연 6∼7%를 주고 상환 시기를 늦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채를 발행하려면 환율 상승을 고려하면 금리가 연 10%를 넘을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국내 보험사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윤 S&P 글로벌 이사는 "금리 상승과 콜옵션 미행사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며 "한국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신규 발행과 차환을 통한 조달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첫 콜옵션 행사일이 예정된 신종자본증권이 있는 곳은 한화생명보험(A·안정적), 한화손해보험(A·안정적), 현대해상화재보험(A-·안정적) 등이다. S&P는 "이들 보험사가 차환 없이 상환만 하면 자본 여력이 감소하고 시장 변동성 대응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까지 시장 상황을 보면 달러 유동성 부족이나 금융위기 현실화 위험을 논할 정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를 환율방어에 쓰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외환보유액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큰 손인 연기금 보유액 등을 고려해도 외환 건전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140억1000만달러로 9월 말(4167억7000만달러)보다 27억6000만달러 줄었다.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당국이 보유 달러화를 시장에 팔면서 외환보유액은 8월부터 석 달째 감소했으나, 여전히 지난 9월 기준 세계 9위 수준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보험회사 등 일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의구심이 제기된 수준"이라며 "오히려 위험은 나라 밖에서 먼저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연말에는 은행 차입이 더 어려워진다"며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과 건전성 규제 완화 등의 각종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자금 조달시장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는 연 4.88%로 마쳐 2009년 1월(5.00%)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대기업들 조차 공모 회사채 대신 단기 상품인 CP나 사모 사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재계 2위 SK는 오는 10일 2000억원 규모의 장기 CP를 발행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 진에어, 코리아세븐, 롯데지알에스, SK렌터카, 이마트24, 등 대기업 계열들은 최근 금리 연 6∼7%의 사모 사채를 발행했다.

나라 밖 금융시장에서 한국물 거래가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가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투자증권 등도 달러채 조달을 중단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여온 호주 달러 채권(캥거루본드) 발행을 앞두고 있으며 일부는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유선희기자 view@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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