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얼마나 더 벌거벗어야 하나

2022. 11. 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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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장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은 채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잘 알려진 투자 명언이다.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빠져나갈 때 누가 원칙을 지키며 투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버핏의 이 말은 비단 투자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위기가 닥쳐봐야 그 조직과 사람의 기초체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물난리부터 레고랜드 사태, 데이터센터 화재,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한 주가 멀다 하고 터지는 대형 사고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자연재해에 대비한 기본적인 도시 안전구조, 화재 등 재해재난에 버틸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 연속성, 국민을 어처구니 없는 희생으로 몰고 가지 않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판이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레고랜드 사태는 무능과 무책임이 국가 경제 전체에 어떤 혼란을 줄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

이들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가지가 아니라 복합적 원인이 응축돼 있다가 폭발했다는 점이다.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몇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줄줄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경종을 울리듯 대형 사고가 터진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만 해도 데이터센터 구조설계부터 배터리 안전성 검증, 화재 당시 초동 대처, 카카오의 서비스 이중화 투자 미비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태원 참사는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음에도 결정적 위치에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역할을 망각한 결과 엄청난 인명 피해로 연결됐다.

부끄러움과 참담함은 계속 반복되지만 상처가 무뎌지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슬금슬금 수영장에 물을 채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8년여 가 지났지만 해상사고는 오히려 늘어났다.

정부는 '제2의 세월호 사고'를 막겠다고 했지만 2020년 기준 연간 선박 해양사고는 3778건으로, 세월호 사고 발생 다음해인 2015년의 2740건보다 1000건 이상 늘었다. 매해 100명 가까운 사람이 해상사고로 인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이 같은 대형 사고가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법·제도 미비를 지적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 등 사고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음을 명문화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주최가 없거나 불분명한 대규모 축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사고 후 "주최자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적용할 인파사고 예방안전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사고 후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밝힌 것도 이 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여야는 뒤늦게 이런 허점을 보완하겠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법을 '핑계'대기에는 이태원 참사는 너무나 심각한 무책임과 직무태만을 드러내 보였다. 사고 전날부터 참사의 전조가 나타났고 112 신고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경찰 시스템은 요지부동이었다. 골목 곳곳에 설치된 CCTV부터 지하철 승하차 인원 데이터, 통신사 기지국 접속 데이터, 지역의 실시간 현장 상황이 모이는 구청 관제센터의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온갖 빅데이터는 참사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어느 곳 하나 알람을 울리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 안전은 압사당했다.

법이 역할을 100% 규정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돌릴 상황이 아니다. 하라는 것만 하도록 규정한 우리나라 법체계를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 법체계를 바꾸는 것부터 정부·공공조직 간의 협업 단절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사회·도시를 아우르는 모든 현장에서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해재난과 사고는 또 닥친다. 그때 누구를 탓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쉽다. 개개인부터 사회 전체가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생각부터 문화, 시스템까지 모조리 바꿔야만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

안경애 ICT과학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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