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발에 참사·복합위기까지···정치, '존재가치' 증명하라 [View&Insight]
北전례없는 무력 도발에 핵실험 위기
정치권 위기 해법도 전략도 없는 정쟁
여야·남북대화 살려···정치 신뢰 복원
정상의 국가에서 정치는 위기 때 빛을 발한다고 한다. 나라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위기가 안팎에서 닥칠 때 정쟁을 일삼던 정당들도 혼연일체가 돼 급한 불부터 끈다는 것이다. 9·11테러 때 미국 정치가 보여줬던 모습은 물론 외환위기 때 한국 역시 그런 ‘대통합’의 기억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 또다시 위기다. 경제위기 징후에 민생은 내려앉고 시장의 공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의 발작증세는 진정되지 않고 국가부도위험지수는 2017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70bp)을 기록했다. 민심의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예민해진 상황이지만 정치권은 ‘청담동 술집’과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무력 도발을 하며 동·서해에 무차별로 미사일을 쏘고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제7차 핵실험을 공언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사회의 위기감도 더 커졌다. 국가애도기간에 잠시 ‘휴전기’가 있었지만 그 기간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은 곧바로 전쟁 수준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석고대죄하라”고 쏘아붙였다. 앞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검찰도 대형 재난(사고)에 대해 수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게 수순 아니냐”며 민주당이 통과시킨 ‘검수완박’을 정조준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초당적 협조는 말의 성찬으로 끝났고 참사 당일 비어 있는 대통령 한남동 관저 경비에 경찰 200명이 투입됐다는 야당의 주장이 나오는 형편이다. 대통령 경호처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선동 정치라고 일축했지만 이는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 정치권의 현주소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여야가 마찬가지다. 참사 앞에서 여야가 대화의 문을 닫아서는 정치 신뢰를 복원할 수 없다. 먼저 윤 대통령이 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3월 10일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때의 초심을 찾아 ‘정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이 다돼가도록 윤 대통령이 야당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가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만남 자체가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여야 대화 복원은 이 대표의 당 대표 당선으로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대화의 물꼬가 열릴 수 있게 됐다. 여야 원내대표와 당 대표가 함께 만나 대화를 복원하고 여야정협의체 등 소통창구를 상설화해 경제위기의 초당적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대화 채널 복원은 남북 관계에도 필요한 형편이다. 한미일 군사 협력을 통해 북한 핵을 무력화하고 확장 억제 수단을 동원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위해서라도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한다면 4자 회담 또는 6자 회담 재개까지 시도해 한반도 비핵화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야·남북 대화는 결국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 대통령 취임 뒤 첫 국회 시정연설을 했던 5월16일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 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실천해 ‘정치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9·11테러 이후 정치적 라이벌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나의 군 최고사령관”이라며 초당적 지원을 약속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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