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미술상] '산다는 것'이 평생 화두 … 누구나 쉽게 공감할 예술 추구

이한나 2022. 11.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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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수상자 설치미술가 김승영
물·흙·돌·냄새 자연재료와
빛·음향·기계장치로 작업
텅 빈 공간과 단순한 오브제
동서양 미학이 만나는 지점
정체성 찾아가는 여정에 공감
김승영 작가가 파주 작업실에서 내년에 전시할 'Tower' 연작에 사용하기 위해 모은 중고 스피커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충우 기자>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각양각색의 중고 스피커가 가득했다.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공동묘지를 지나 도달한 모 고등학교 인근 작업실. 괴짜 과학자 같은 외모의 작가 김승영(59)은 바닥에 지름 5m 원을 그리고 내년 인천에 개관하는 세계문자박물관 설치 작품 'Tower' 연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2022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그는 처음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조각을 전공하긴 했지만 추상 조각 거장인 우성 김종영 전 서울대 교수와 연결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이력뿐이다.

김종영미술상은 2016년부터 조각은 물론이고 회화와 설치, 미디어 아트 등 모든 미술 영역으로 문호를 넓혔으며 첫 수상자인 추상화가 김태호, 조각가 박일순(2018년)에 이어 세 번째 수상자가 됐다. 특히 김종영의 작업 태도와 닮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승영은 1980년대부터 스스로의 정체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을 작품화했다. 특히 1999년 한국 대표로 뽑혀 뉴욕현대미술관(MoMa) 분관 PS1 국제레지던시를 다녀온 후 일상의 기억, 삶, 소통, 치유 등 주제를 설치와 조각, 영상, 사운드 작업으로 다양하게 펼쳐왔다. 당시 맨해튼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불통의 경험이 성경 속 바벨탑을 떠올렸고 20년 만에 작품으로 완성했다. 중고 스피커를 1000개 안팎으로 쌓아 올리고 8개 스피커에 일상 소음을 담은 작품 'Tower'다.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후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로 발전돼 국립중앙박물관(2019년)과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뮤지엄(2021년)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고려시대 나한(부처의 제자) 석조상이 스피커 탑 사이에 들어앉아 조화를 이루고, 스피커가 둘러싼 가운데는 검은 우물 작품 'Mind'(2019)가 놓여 물 떨어지는 소리와 일상 소음이 교차하며 부처와 나한, 대중이 만나는 순간이 탄생한다.

삶의 무게를 형상화한 김승영 작가의 2016년 작품 '뇌(Brain)'.

세상의 다양성과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작품은 작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자기 나름대로 번역해서 봤을 때 완성된다. 현대미술과 옛 장인의 작품이 만나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위적인 것이 별로 없다. 일상의 흔한 의자, 테이블, 문을 그대로 활용한다. 물이나 이끼, 흙, 돌, 냄새 등 자연 재료와 빛이나 음향, 기계장치로 작업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1996년 첫 개인전 때 마음을 표현하고자 물을 사용했다. 지난해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 '창'은 미술관 한편 창문에 노란 색지를 입혀 장소 특정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남들이 보지 못한 지점을 다시 건드려 발견하고 생각하게끔 한 것이었다. 김종영 선생이 지향한,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뮤즈(영감을 주는 존재)는 어머니였다. 넉넉하던 집안이 몰락해 달동네로 쫓겨나자 가족을 이끈 것도 어머니였다. 남몰래 흘리던 어머니의 눈물과 번뇌로 가득한 인생이 화두로 다가왔다.

작품 '의자'(2011)는 어머니가 장사할 때 앉았던 빨간 철제 의자를 그대로 썼다. 좌석 아래 휴대용 가스기기로 물을 데우는 장치로 온도를 37도로 맞추면 관람객들이 앉아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기억의 방'(2001)에 놓인 어머니의 의자는 아예 좌석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가족사진을 띄워 형상이 사라지게 된다. 어머니 자리에 감히 앉을 수 없던 아들의 마음을 담았다. 지난해 어머니가 타계한 후 3년상 치르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 중이다.

작가의 대학 시절 철조 조각이 유행이었지만, 그는 설치가 소통하기 편했다. 재능이 별로 없었다는 작가는 당시 젊은 스승(고 이종빈 경희대 교수)이 그의 작품을 보며 내뱉은 "역시"라는 격려가 평생 포기하지 않고 작업하는 힘이 됐다고 한다.

자화상 탐구도 다채롭다. 작업실 한편 낡은 가방을 여니 붉은 흙이 가득한 가운데 나침반이 있다. 지침이 계속 돌며 헤맨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작가를 표현한 작품이다. '기억 1963~2019'란 작품은 작가가 평생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영화가 끝난 후 자막처럼 흐른다. 멀리서 보면 영어로 거대한 'I(나)'가 된다. 작가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사람들을 모두 등장시켜 패션쇼처럼 런웨이하는 퍼포먼스를 인생작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김승영은 특별하지 않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형성했고,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정진하고 있다.

"작품을 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주고 또 가르침을 받는다고 본다. 작품이 몇 년 후 나에게 다시 이야기를 걸어오기도 했다. '어떻게' 보여줄까를 많이 고민한다. 사실을 모아서 다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단순할 때까지 간다. 쓸데없는 것을 비우는 행위가 가장 어렵다."

그런 고민을 최근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 '쓸다'(2021~2022)로 풀었다. 관람객이 책상 위 빈 종이에 머릿속 묵은 감정이나 기억을 쓰고 구겨 버리면 그 종이를 수거해 태워 재로 남긴다. 한 승려가 절에서 빗질하는 영상과 함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다. 동서양의 미학이 합쳐진다.

우성 김종영은 1980년 조각 작품집 '자서'에 이렇게 썼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파주/이한나 기자]

▷▷김승영 작가는… △1963년 서울 출생 △1991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2006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1996년 유경갤러리 이후 총 26회 개인전 △전혁림미술상(2020) 동아미술대상(1998) 등 수상 △1999년 PS1 국제스튜디오프로그램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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