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속 방중 마친 숄츠 “핵무기 반대, 의미 충분”…중국 “독일 자주성 보여줘”
논란 속에 중국 방문을 마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중국은 숄츠 총리 방중이 대유럽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숄츠 총리는 5일(현지시간) 사회민주당 행사에서 “중국 정부와 시 주석,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며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자신의 방중을 두고 국내외에서 비판 여론이 많았지만 시 주석의 핵무기 사용 반대 입장을 끌어낸 것은 분명한 성과라는 것이다.
숄츠 총리는 앞서 지난 4일 12개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 및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연쇄 회담을 했다. 시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에 연임돼 집권 3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물론이고 코로나19 발생 이후 거의 3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서방 지도자의 중국 방문이었다. 숄츠 총리의 방중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대중 견제 강화 흐름에 역행한다는 국내외 비판과 논란 속에서 이뤄졌다. 이를 의식한 듯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서로에게 일정 부분 필요한 명분을 제공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양국은 서로 존중하고 핵심 이익을 배려하며 대화와 협상을 견지하고 진영 대결 등의 방해에 공동으로 저항해야 한다”며 “중국과 유럽 관계가 서로 대립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제3자의 제약을 받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항상 유럽을 전면적 전략 동반자로 간주하고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주성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유럽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며 미국의 대중 포위망 강화 속에서 자주성을 견지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에 숄츠 총리는 “중국은 독일과 유럽의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라며 “독일은 무역 자유화와 경제 글로벌화를 지지하며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반대한다”고 화답했다. 그는 또 “세계는 다극화된 구도를 필요로 하고 신흥국의 역할과 영향은 중시돼야 한다”면서 “독일은 진영 대결에 반대하며 유럽과 중국 관계 발전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으로 방중 명분을 챙겼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현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며 핵무기 사용이나 사용 위협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숄츠 총리는 또 리커창 총리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대만과 소수민족 인권 문제 등을 언급하며 그의 방중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불식시키려 애썼다. 중국이 숄츠 총리 방문에 맞춰 자국 내 외국인에게 독일 바이오엔테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허용하고 에어버스의 여객기 140대를 구입하기로 한 것은 그에게 실리적 측면에서의 방중 명분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 내에서도 그의 방중 성과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도이체벨레(DW)는 숄츠 총리의 방중을 두고 “독일 정부의 전략에 어긋나는 동시에 EU의 통합을 위태롭게 했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그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숄츠 총리가 해야 할 말을 한 것은 안팎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한 입장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중국 방문이 옳고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너차이퉁(FAZ)도 “중국 정부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접종을 허용한 것 외에 숄츠 총리가 거론한 대만이나 신장 문제, 기후변화와 무역 등에 관해서는 단기방문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게 적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매체들은 숄츠 총리 방중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숄츠 총리 발언을 전하며 “독일은 여전히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구축한 전략적 자주성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또 관영 환구시보는 “숄츠 총리의 방중은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의의가 크고 중·독, 중·유럽 고위층의 상호 방문 재개 버튼을 눌렀다는 의미가 있다”며 “중·독 관계와 중·유럽 관계가 격동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안정추 역할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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