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개도국 피해와 선진국 책임 문제 부각···이집트 COP27 개막

김혜리 기자 2022. 11. 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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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로 국토 3분의 1 잠긴 파키스탄
온실가스 배출량 1%도 안되지만
기후변화 피해는 세계 10위 안에
“온실가스 배출 많은 선진국 책임”
지난 8월28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 지역에서 한 이재민이 홍수로 무너진 집의 잔해를 둘러보고 있다. 자파바라드/AFP연합뉴스

파키스탄은 지난 8월 역사상 최악의 홍수를 경험했다. 북부 산악지대 빙하가 녹아 인더스강이 불어난 데다 몬순 우기에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국가재난관리청(NDMA) 통계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최소 1696명이 숨졌고, 파키스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3300만명이 수해를 입었다. 또 200만여 채의 주택과 시설 등이 파괴됐고, 약 1만3000km의 도로가 유실됐다. 당국은 영토에서 물이 전부 빠지려면 앞으로 4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 진단했다.

이번 홍수의 원인이 기후변화로 지목되면서 파키스탄에선 “불공평하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가장 취약한 10개국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주범국인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연 1000억달러 규모의 기후기금을 지원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기후 불평등’ 논의에 불을 지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6일(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있는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막했다.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약 200개국 대표단과 환경·기후 관련 시민단체, 기업인, 언론인 등 4만여 명이 참여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비롯해 80여 개국 정상과 국가 수반급 인사도 참석한다. 올해 총회에선 파키스탄 사례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개도국들의 ‘손실과 피해’와 이에 대한 선진국들의 책임과 보상 문제가 집중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COP27에 참석 예정인 파키스탄 현지 시민사회단체 ‘인더스 콘솔티움’의 활동가 피자 나즈 큐레쉬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파키스탄의 현실과 선진국 책임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파키스탄 시민사회단체 ‘인더스 콘솔티움’ 소속 활동가 피자 나즈 큐레쉬.

- 파키스탄이 홍수 피해를 입은 지 3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현지 상황은 어떤가.

“정부에선 이재민 대부분이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처참하다. 이재민 3300만명 중 아직 63만명이 캠프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그마저도 텐트 같은 도구가 부족해서 그냥 하늘을 바라보고 잠드는 가족들도 많은 실정이다. 아직 물에 잠겨있는 지역들도 꽤 있다. COP27에 가기 전에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러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중 신드주의 상하르 지역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고 30분이나 이동해야 했다.”

- 남쪽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뭔가.

“파키스탄에는 4개 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쪽에 있는 발루치스탄주, 신드주, 펀자브주가 이번 홍수로 큰 피해를 당했다. 특히 인더스강 하류가 바다랑 만나는 곳에 있는 신드주의 피해가 컸다. 29개 지역 중 24개가 이번 물난리로 타격을 입었을 정도다. 신드주는 원래 건조한 지역이라 홍수에 대비가 잘 안 되어 있다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또 신드주는 카라치 같은 대도시 말고는 지역의 80%가량이 시골인데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물이 빠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농민들이 입을 피해가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보나.

“그렇다. 지금 140만 에이커에 달하는 농작물은 100% 다 망가졌고, 농산물 거래도 완전히 망했다. 원래 목화랑 사탕수수를 생산해서 수출하는 지역인데 이게 다 물에 잠겨버렸으니 주민들이 돈을 벌 수단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제 밀 파종 시기가 다가왔는데 물이 아직 덜 빠져서 농부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3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의 자파라바드 지역이 폭우로 물에 잠기자 이재민들이 길거리에 임시 천막을 치고 지내는 모습. 자파바라드/AFP연합뉴스

- 물난리가 난 후 정부나 국제기구의 대응은 어땠다고 보나.

“폭우로 강물이 불어 넘쳐 처음 물난리가 났을 때 주요 매체에서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파키스탄 정치가 불안정한 상황이라 정치 뉴스가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국제기구의 대응은 아주 미흡했다. 지금 사람들은 몇몇 기업가들의 옷이나 음식 기부에 의존하고 있고, 난민 캠프에는 자리가 없어서 그냥 길가에 누워 잠드는 사람들도 많다. 캠프 상황도 열악해서 여자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깨끗한 물이 부족해서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한동안 고여 있던 물이다 보니 수인성 질병도 번지고 있다. 뎅기열이랑 말라리아, 설사도 흔한 질병이 됐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국제비정부기구(INGO)는 몇 안 된다.”

- 파키스탄은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례적인 기후 현상으로 고통받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파키스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10개국 중 하나다. 그래서 파키스탄 정부와 시민 사회는 그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북반구 선진국들, 특히 온실가스 배출 1~10위 국가들에 파키스탄의 재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파키스탄 입장에선 기후금융 지원 말고 부채 탕감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던데.

“맞다. 국제 금융기관들이 파키스탄의 외채를 탕감해줘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확대금융지원(EFF) 프로그램은 파키스탄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었지만, IMF가 세수 확대 정책을 요구하면서 파키스탄 정부는 연료 보조금 지급을 축소했다. 8월22일 물난리가 났는데 9월1일부터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집도 잃고 전기도 못 쓰게 된 상황에서 수천 루피로 불어난 전기세 청구서를 받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대외 부채는 지난 6월 1302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 홍수 피해 복구에 드는 비용은 약 300억달러로 추산된다. 세계은행(WB)은 피해 복구를 위해 20억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지금 파키스탄은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건 ‘기후 정의’의 뜻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의 주범들이 앞서서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맞다. 우리가 초래하지도 않은 기후 위기의 악영향을 우리가 가장 먼저 겪게 되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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