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타다닥’ 46초 만에 불 끄는 가루… ‘미세캡슐 소화기’ 공장 가보니
삼성SDI ESS 부품 채택… 연 매출 200억
“자동소화 멀티탭 등 B2C로 사업 확대”
3일 오후 경기 김포시 양촌읍의 지에프아이(GFI) 2공장. 공장 문으로 들어서니 계단 위로 대형 탱크 6대가 기계음을 내며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곳은 세계 유일의 ‘미세캡슐 소화기’를 만드는 곳으로, 머리카락 10분의 1 굵기의 캡슐 입자 안에 소화(消火)약제를 넣는 공정이 한창이었다. 창고에는 소화약제 300킬로그램(㎏)이 담겨있는 드럼통 56개가 보관되고 있었다. 총 11일치 생산량이다.
2대의 보조탱크에서 약제 혼합 등 1차 공정을 하면 1톤(t) 용량의 제조탱크 4대가 이어받아 이 약제가 들어간 미세캡슐을 만든다. 이후 건조실로 넘어가 탈수 공정을 마치면 모래알보다 고운 선홍빛 캡슐이 만들어진다. 제조에는 총 1~2일가량이 걸린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보니 제조 장비 역시 GFI가 직접 설계해 제작했다.
인근 1공장에서는 이 미세캡슐을 활용한 자동소화 멀티탭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반제품으로 들여온 멀티탭 내부에 이 캡슐로 만든 자동소화 패드를 부착해 조립하는 공정이다. 6구 멀티탭 기준 15센티미터(㎝) 길이에 폭 5.6밀리미터(㎜), 두께 1㎜의 기다란 띠 모양의 패드가 멀티탭 내부 바닥에 붙어있다. 전력 과부하 등으로 멀티탭 내부에 불이 나면 이 패드가 불씨를 꺼 불길이 번지는 걸 막을 수 있다.
GFI는 2014년 설립된 안전산업 분야 제조혁신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미세캡슐 소화기를 개발했다. 가루처럼 고운 미세캡슐 알갱이 안에 소화기에 쓰이는 약제인 노벡 1230(NOVEC-1230)이 들어있는데, 일정 온도에 다다르면 캡슐이 터지면서 약제가 뿜어져 나와 불을 끈다. 100도(℃)가 되면 물이 끓듯이 열 반응에 따라 액체가 기화하는 화학 반응을 원리로 하고 있어 오작동률이 0%에 달한다.
GFI는 이 미세캡슐로 자동소화 패드, 테이프, 덮개, 필름 등을 만든다. 분·배전함 안에 패드를 붙이거나 전선을 테이프로 감고 케이블 다발 위에 덮개를 덮어 활용할 수 있다. 전선이나 플러그에 불씨가 피어오르면 자동으로 소화약제가 터져나오기 때문에 화재감지기가 알아차리기 전에 불을 끌 수 있다. 별도의 유지 관리도 필요하지 않다. 화재 위험이 큰 곳에 최소한의 장치를 부착해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GFI의 목표다.
윤성철 대표는 “고의로 불을 지르지 않는 이상 불이 나는 곳은 에너지 저장장치(ESS), 분전함, 배전함, 멀티탭 등으로 한정적이다. 이곳의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것만으로도 대형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며 “화재감지기는 불길이 어느 정도 타올라야 감지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어렵고, 스프링클러도 오작동률이 30%에 육박한다. 불만 끄는 게 아니라 전체가 물바다가 되는 것도 단점인데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미세캡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분전함 모형 내부에 손바닥 만한 자동소화 패드를 올려놓고 내부에 불을 붙이자, 한 뼘 높이 넘게 타오른 불길이 ‘타다닥’ 하는 미세캡슐 터지는 소리와 함께 46초 만에 꺼졌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소공간용 소화용구 인정 기준인 90초보다 두 배 빠르다.
GFI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설립 3년 만인 2017년 대한민국우수특허 화학·안전 부문 대상과 대한민국안전기술대상 대통령상을 받았고 2020년 이노비즈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지난해엔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을,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삼성SDI가 만드는 ESS에 화재예방안전부품으로 적용되면서 지난해 매출 200억원을 돌파했다. 윤 대표는 “현재 국내에는 경쟁업체가 없고, 해외에 일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곳이 있지만 기술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GFI는 성장세를 이어가 내년 3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대부분의 매출이 B2B(기업 간 거래)에서 나오는데 자동소화 멀티탭 판매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을 확대하려 한다. 멀티탭이 조(兆) 단위 시장인데, 내년에 매출 5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배터리 안전성 제고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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