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경계 허무는 ‘이머시브 시어터’ 뜬다
공연에 집중하게 만드는 시도 잇달아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배우가 무대에서 극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몸짓·동작·말로써 관객에게 보여주는 예술.' 백과사전에서 연극(演劇)을 설명한 뜻이다. 여기에는 연극의 3대 기본요소인 배우, 무대, 관객뿐 아니라 극본도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본 요소 사이에는 독자적인 경계가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경계가 희미하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배우들이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야외 거리 혹은 어떤 건물 전체에서 공연한다면 관객들은 배우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그들 사이에서 공연을 봐야 할 것이다. 정해진 좌석에 앉아 주어진 시간 동안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을 보고 있기만 하면 되는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관객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
배우들의 숨소리 느끼며 공연 관람
바로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장르다. 가장 대표적인 수식어는 '관객 몰입형'이다. 이러한 형식의 연극이나 뮤지컬은 보통 배우, 무대, 관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단순한 관람이 아닌 어떤 상황에 참여시키는 모양새를 취한다. 관객은 배우의 바로 옆에서 숨소리를 느끼면서 연기와 노래를 하는 광경을 받아들이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우들의 질문에 답하고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관객 참여형' 공연이 향후 주류가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관객의 적당한 '추임새' 같은 참여가 공연의 일부가 돼 개성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관객은 조용히 관람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배우들이 말을 걸어오거나 다른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그럼에도 관객이 공연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가 미국 뉴욕 첼시에 위치한 창고 건물을 개조한 뒤 호텔 콘셉트로 만든 《슬립 노 모어》(2011)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호텔의 객실이나 부대시설을 돌아다니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연기한다. 관객은 마치 맥베스의 성에 온 손님들처럼 3개 층에 마련된 십여 곳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여러 장면을 관람하기 위해 건물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녀야만 한다. 배우들을 제외한 모든 관객은 공연 내내 가면을 쓰고 관람하면서 새롭게 주어진 관객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공연에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머시브 시어터는 한마디로 개별 관객들의 다양한 시점이 필수이며 이를 통해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공연을 관람하게 되는 '민주적'인 관람 방식이다.
《위대한 개츠비》(알렉산더 라이트 연출, 2020)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도한 상업 라이선스 이머시브 뮤지컬이다. 서울 그레벵 뮤지엄 건물 1, 2층을 공연장으로 바꿔 개츠비 맨션에 초대하는 파티 콘셉트로 운영했고, 관객은 극 중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고 음료를 마시며 파티에 참석하는 느낌으로 공간을 돌아다니며 앉거나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제작된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이양구 작, 김태형 연출, 2021)는 회당 20명의 관객이 공연장인 전태일기념관 2, 3층과 옥상까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동조합원으로 분한 배우들과 직접 교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호평을 받았다.
이머시브의 경우 관객들의 다양한 개별 체험까지 사전에 예상해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관객 참여형 공연에 그칠 수도 있다.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50명 이하로 입장 인원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은 만큼, 비영리 프로덕션이 아니라면 상업화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공연 중인 서울예술단 제작 뮤지컬 《금란방》은 눈여겨볼 만하다. 정동극장 정식 무대에서 공연하지만, 이머시브 형식을 추구하며 극장 로비에 사전 길놀이 공연을 배치하고, 전통 연희극처럼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별도로 보장된 무대석까지 배치했다. 이를 통해 몰입감을 조금 덜어냈지만, 관객과의 적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중극장 이상 규모의 공연이 가능하게 됐다.
재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실화도 다뤄
이 작품의 제목은 조선 영조 때 금주 단속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다원(茶園)을 뜻한다. 손님들에게 야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 이야기꾼 '전기수'로 장안에 널리 알려진 이자상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소동극이다. 무대 위에는 DJ가 연신 일렉트로니카 클럽 음악을 틀어주며 시대를 초월한 분위기를 돋우는 동시에 고수가 있는 전통 악단도 배치했다. 전통과 현대가 혼합된 독특한 퓨전 뮤지컬이다. 특히 극중극에 등장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방지 캐릭터는 신스틸러이자 오늘날 성적 소수자의 젠더 이슈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에서 작품을 관람하도록 각색됐다.
이머시브 시어터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공연장 안에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없애, 결과적으로 관객의 몰입감을 끌어올린 또 다른 작품이 최근 개막했다. 우란문화재단 제작 뮤지컬 《동네》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은 블랙박스 형식의 우란2경 극장 바닥에 아예 큐브를 여러 형태로 쌓아 배치한 다음 이를 관객들의 좌석으로 사용하고 동시에 배우들의 동선으로도 사용한다. 배우들은 관객들 사이사이를 돌면서 연기하고 장면에 따라 조명은 배우 주변의 관객까지도 비춘다. 관객들의 좌석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자세를 바꿔가며 관람해야 한다. 작품의 제목인 '동네'를 표현하기 위해 관객이 극 중 일부가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관객에게 의견을 묻는 등의 참여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을 소재로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고향과 사랑하는 존재들을 잃게 된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6명의 배우가 다역으로 지역 주민, 소방관, 병원, 기자 등을 연기하며 노래하고 재난 상황에서 겪은 긴박한 상황들과 이후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은 실화를 관객들 사이에서 전달한다. 마치 관객들이 재난 상황에서 피난처에 모여 있는 느낌도 받을 수 있고, 상황이 벌어지는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받게 된다. 이 작품은 높은 완성도와 함께 이머시브 시어터가 추구하는 '공간의 조성을 통한 수평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과도 맥락이 닿아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로 기억될 것이다.
결국 이머시브의 목표는 현장성이 생명인 무대예술 창작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만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명적 질문이고, 그 해결책을 찾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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