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하나 했더니 실망"…이태원 참사 후 여야 지지율 다 빠졌다
전문가들 "사태 수습·예방책 마련해야"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후 정치권이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태 수습을 강조한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태 수습과 피해자 위로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야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수 시간 전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접수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여야 공방이 다시 시작됐다. 야권에서는 정부와 경찰의 대응 미흡, 경찰의 '셀프 수사'를 파고들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여권에서는 '검수완박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개정이 먼저'라며 역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을 향한 대중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지지율이 모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와 같은 사태를 또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진상 규명과 예방책 제시를 촉구하고 나섰다.
참사 뒤에도 공방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진상 규명으로 꼽힌다. 이는 마녀사냥이나 억측이 아니라 온전히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유가족을 위해서 특히 필요한 작업이라는 지적이다.
방식에 대해서는 여야간 입장 차가 너무 커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야당은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며 반드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 여기에 그간 사안별로 입장차를 보이던 정의당까지 민주당과 함께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끝내 거부할 경우 야당의 힘만으로 국정조사 계획서를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과 여론 일각에서는 "야당에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당은 국정조사보다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개정이 먼저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부에서도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으나 수사기관의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이에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과 당장 정기국회 입법과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주도권 싸움이 격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찰 녹취록 발표 후에는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자'는 식으로 여론이 바뀌었다"면서 "각자 상황에 따라 정치권 셈법이 매우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사태수습, 그리고 예방책
국민들 사이에선 사태 수습 후 예방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을 비롯한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행정 시스템을 전면 보완할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서울 내 지구대·파출소 242곳 중 정원 미달인 곳은 43.4%로 절반에 달했다. 현재 경찰 내에서 책임자를 찾는 일뿐 아니라 경찰 내 인력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향후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유사 사건을 예방 혹은 수습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원이 필요하고, 그러면 또 치안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번 참사 당일에도 상당수 경찰이 집회 현장에 동원돼 인력 누출이 심각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의무경찰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경찰 인력이 더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용산서 소속 의무경찰은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4일 행정안전부가 "지자체·경찰·소방 연결 재난통신망이 작동 안 했다"고 밝히면서 유관 기관 소통망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 2017년에 인근 도로를 넓히려던 국토부 연구보고서가 제출됐으나 추가 논의는 없었고, 사건이 발생한 헤밀턴 호텔이 불법 증축됐다는 사실도 전해진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방식만으로는 해결이 안 난다"면서 "여러 방면에서 국민의 안전성을 재고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경닷컴이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의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핼러윈 전 토요일 9~10시경은 매년 인파가 평소보다 3배가량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을 미리 진단해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하철 과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국토부 차원에서 철도회사들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처럼 정부 부처나 국회에서도 유사 사건이 발생할 있는 곳을 미리 진단해 대응 시스템을 갖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 다 별로"…尹·與·野 지지율 다 하락
이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여야의 지지율은 일제히 각각 1%포인트씩 떨어졌다. 격주로 실시되는 전국지표조사(NBS)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주 전과 같았으나 부정률이 1%포인트 올랐고, 여당과 야당은 같은 기간 각각 2%포인트와 1%포인트 떨어졌다. 큰 낙폭은 아니고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대체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이 모두 조금씩 빠지는 모양새다.
이는 정부는 물론 여야에 실망감을 드러낸 이들이 적지 않은 탓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 공방보다는 의혹 해소, 예방책 마련으로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주장도 대두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어떤 이해관계나 정파와 무관하게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사태가 수습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사회적 공론장 역할을 자처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신현보/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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