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미·중 신냉전의 진짜 원인을 찾아서
제국의 충돌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글항아리 펴냄
“중국의 세기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1990년대 초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미국 시장에 접근하려면 ‘인권 문제를 개선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중국 정부는 클린턴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미국 대기업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며 난국을 타개해나갔다. 클린턴은 결국 조건을 철회하는데, 저자는 이 사건을 ‘미국의 노동조합-인권주의 외교 엘리트-노동집약적 산업체 연합에 대한 비즈니스 연합의 승리’로 해석한다. 미국 비즈니스 연합의 입장은 미·중 자본 간 경쟁이 격화되며 180° 바뀐다. 저자는 미·중 간 ‘신냉전’의 원인에 대한 기존 시각(민주주의 대 권위주의)과 달리, 두 나라의 자본 간 경쟁이 지정학적 충돌로 확대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아무튼, 사전
홍한별 지음, 위고 펴냄
“글을 쓰는 사람은 사전을 닻으로 삼아 최대한 멀리 뻗어나가야 한다.”
영어 foolish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까? ‘어리석은’ ‘바보 같은’이라는 뜻일 것이다. 어떤 사전엔 ‘어벙하다’ ‘무모하다’ ‘어리삥삥하다’까지 70여 개 유의어가 나온다. 전부 미묘하게 다른 어감이다. 번역은 그중 가장 맥락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20년 경력의 출판 번역가인 저자는 단어 하나가 변변찮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사전을 사랑하고, 단어에 관한 자잘한 정보를 한데 모은 ‘나만의 용어집’ 만들기를 좋아한다.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는 완벽하지 않고, 당대의 편견이 늘 반영된다. 무수한 단어의 세계를 파고드는 번역가의 노동을 담았다.
녹스
앤 카슨 지음, 윤경희 옮김
봄날의책 펴냄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의 배후에는 비밀이 있다고 추정하면 언제나 위안이 된다.”
세워두면 묘비 같고, 눕혀두면 관을 닮았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면 아코디언 형태로 접힌 종이가 문자 그대로 ‘쏟아진다’. 기계가 할 수 없는 만듦새다. 본문은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풀칠해 이어 붙이는 형태로 만들었다. 제작 기간만 두 달 걸렸다. 무엇보다 이전에 본 적 없던 책의 물성이 먼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인·번역가·고전학자인 저자는 오빠의 죽음을 해석하기 위해 먼저 ‘수집’한다. 그가 더듬거리며 편집한 슬픔의 무게가 책만큼이나 무겁다. 일부만 남은 사진과 편지, 맥락을 알 수 없는 단어의 파편들로 세운 무덤 앞에서 애도란 이제 세상에 없는 이의 침묵을 해석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너와 추는 춤 4
이연수 지음, 호비작생이 펴냄
“사랑은 또한 가장 큰 위로라는 것. 그것이 개들이 가르쳐주는 가장 어려운 비밀.”
책을 펼치면 일단 끝까지 읽게 된다. 여러 번 읽어도 매번 그렇다. 완독까진 30분 내외.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무척 시간이 천천히 흐른 느낌이다. 노을 지는 산책길을 오래 걸은 것 같기도 하고, 늦여름 어스름한 때 깜빡 졸다 깬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여백이 많은 책이기 때문일 거다. 사람이 물러나 있어서 더 그렇다.
“인간은 바보다. 개와 살면 알게 된다. 개들은 삶의 중요한 비밀을 다 알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이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보여준다. 누렁이 ‘냇길’과 천방지축 어린 개 ‘소금이’를 통해 저자 ‘인간’이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믿게 되는 순간순간을 포착했다.
아메리칸 프리즌
셰인 바우어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펴냄
“이 책은 4개월 동안 내가 직접 겪은 어느 민영 교도소의 실태를 다룬다.”
“미국이 사람을 교도소에 가두는 비율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미국 비영리 언론 〈마더 존스〉 선임기자인 저자는 미국 민영 교도소에 취업해 교도관으로 일했다. 미국은 효율성과 다양성을 위해 민간기업의 교도소·구치소 운영을 허용한다. 기업형 수감 시설은 수감자들을 교정하는 목적보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급급하다. 저자는 재소자와 교도관의 실생활에 다가가 그들의 일상과 감정을 전한다. 영리 목적 민영 교정시설의 기원을 파고든다. 노예제의 잔재가 오늘날 미국 교정시설 영리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미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생생하게 담아낸 논픽션이다. 감히 ‘르포란 이런 것이다’라고 평하고 싶다.
땅은 잘못 없다
신민재 지음, 도서출판 집 펴냄
“정말 특별한 건물들이다.”
책은 두툼한데 책의 부제목은 ‘얇은 집 탐사’다. 지은이는 서울 곳곳에 있는 ‘특이한 조건의 땅에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는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땅과 땅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얇은 건물, 개발에 밀려 잘려나간 상처를 입은 채 서 있는 건물, 고쳐 짓고 고쳐 지어 처음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신한 건물, 도로가 생기면서 건물의 앞뒤가 바뀐 건물’ 등. 건축가인 지은이는 “못난 땅이라고 탓하기보다는 땅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살펴보고 땅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사진과 스케치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건물마다의 사연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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