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마음”이라는 윤 대통령, 그걸론 부족하다
참사를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
“비가 와도 안 와도 내 잘못”이라던 노무현
156명 희생에 “죄송한 마음”이라는 윤석열
대한민국 헌법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입니다.
대형참사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들을 늘 괴롭혔습니다. 대형참사가 터지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추락하고 정부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1970년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33명 사망),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163명 사망), 1974년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88명 사망),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59명 사망, 1300여명 부상) 등 대형참사가 있었습니다.
대형참사에 변명 늘어놓던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워낙 많은 대형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취임 전 당선자 기간에 예고편까지 있었습니다. 1993년 1월7일 청주시 우암상가아파트가 무너져 28명이 사망했습니다. 1993년 3월28일에는 경부선 구포역에서 북쪽으로 900m 떨어진 지점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했습니다. 78명 사망, 50여명 중상의 참사였습니다. 삼성종합건설의 지하 전력구 공사현장 발파 작업 때문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삼성이든 어디든 철저히 조사하고 다 잡아들이라”고 펄펄 뛰었습니다. 기겁을 한 삼성이 검찰에 자기들의 ‘죄상’을 제출하는 진풍경도 벌어졌습니다. 1993년 7월26일에는 목포로 가던 아시아나 여객기가 공항에 접근하려다 산에 충돌했습니다. 66명이 사망했습니다. 1993년 10월10일에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무려 292명이 숨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 안전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습니다.
참사는 이어졌습니다. 1994년 10월21일에는 성수대교 중간 부분이 무너져내려 시내버스와 승용차 등이 추락했습니다. 등굣길 학생들을 포함해 32명이 숨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또다시 머리를 숙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서 “부실기업을 떠맡은 기분”이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야당 대변인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냐”고 따졌습니다.
그래도 참사는 계속됐습니다. 1994년 10월24일 충주호 유람선에서 불이 나 3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1995년 4월28일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1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습니다. 차량 150여대, 건물 80여채가 파손됐습니다. 1995년 6월29일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해 502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실종됐습니다. 900여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습니다. 1997년 8월6일에는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서 착륙 도중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28명이 숨졌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왜 이렇게 대형참사가 많았을까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억울했던지 뒷날 회고록에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나는 재임 중 안전 및 재난 방지를 위해 관계자에 대한 독려와 문책, 부실과 안전사고를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에 나름대로 각별한 성의를 갖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랜 독재정권하에서 굳어진 부패와 적당주의라는 한국병 때문에 재임 중 계속해서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사건을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이들 영정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아내는 유족을 부여잡고 눈물을 훔쳤다. 어른들을 믿고 여행에 따라나선 천진한 어린이들의 죽음 앞에 서 있으니 참으로 참담했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많이 원망할 것만 같았다.”
1999년 10월30일에는 인천 인현동 호프집과 당구장 건물에 불이 나 56명이 사망했습니다. 업소 주인이 경찰과 유착해 불법 영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경찰청장을 경질했습니다. 2003년 2월18일에는 대구 지하철에서 불이 나 12량의 객차가 불타고 192명이 숨졌습니다.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희생자 가족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심하게 망가진 위기대응 시스템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9년 1월20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 경찰이 진입하다가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했습니다. 2010년 3월26일에는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이 숨졌습니다. 천안함 침몰은 재해가 아니라 북한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였습니다.
2014년 4월16일에는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탑승자 476명 가운데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때도 크고 작은 참사가 있었습니다. 2017년 12월3일 인천 영흥도에서 낚싯배가 뒤집혀 15명이 숨졌습니다. 2017년 12월21일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습니다. 2018년 1월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47명이 사망했습니다. 2018년 11월9일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졌습니다. 2020년 4월29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했습니다. 2021년 6월9일 광주 학동에서 빌딩이 무너져 9명이 숨졌습니다. 2022년 1월11일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6명이 숨졌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채 안 돼서 이번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참사 다음날인 10월30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슬픔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오늘부터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의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습니다.”
참사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랬는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112 신고 내용이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상민 장관, 오세훈 시장, 윤희근 청장이 줄줄이 사과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엉뚱하게 외신 브리핑에서 농담을 했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사과했습니다.
경찰 보고 라인,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 대통령실 국정상황실 등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위기 대응 시스템이 이처럼 심하게 망가졌다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정권을 맡아서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희근 청장, 이상민 장관은 물론이고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다 물러나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습니다. 11월4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9%로 지난주 30%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국정 지지율은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회복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
마무리하겠습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장경태 최고위원이 이상민 장관의 책임 회피 발언을 비판하며 대통령의 책임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다. 국민 여론이 찬반으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문제도 더 미룰 수 없을 때는 어느 쪽이든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럴 때는 내가 의사결정권을 쥔 권력자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 권력의 이면에는 국민 누구에겐가 억울하고 불행한 일이 생기면 모두가 대통령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부담감이 놓여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오후 조계사 위령법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습니다. 부족합니다. 머리를 더 깊숙이 숙이고, 더 간곡하게 사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국무총리, 장관, 경찰이 문제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도대체 대통령을 왜 하려고 했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참사 책임 추궁하는데 “웃기고 있네” 김은혜, 결국 국감장 퇴장
- 베테랑·탈권위·투자의 힘…SSG의 완벽한 이륙과 착륙
- 김용 공소장에 이재명 수차례 적시…‘공범’ 여부는 안 담겨
- 권익위 “‘청담동 술자리’ 제보자, 공익신고자 요건 검토 중”
- [단독] SPC, 믹서기 뚜껑+얼음 같이 갈았다…피해자 CT 찍었더니
- 이상민 감싼 대통령실 “장관 경질? 후진적”…또 경찰만 맹폭
- 오늘 못 보면 200년 기다려야…붉은 달과 천왕성의 숨바꼭질
- 커피믹스, 어떤 어둠도 못 꺾는 의지를 네 글자로 줄이면
- “입건 참담해”…‘손 떨며 브리핑’ 용산소방서장에 쏟아지는 격려글
- 북극곰 ‘발바닥 젤리’…미끄럼 방지 양말 같은 존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