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코로나 격리 르포] 병원·호텔·집 3곳서 한 달간 사실상 감금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양성으로 확인돼 병원으로 이송할 테니 준비하라"
한국에 다녀온 뒤 이틀째인 지난달 15일 늦은 밤 투숙 중이던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격리 호텔 객실로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입국하기 직전 PCR 검사에서도 음성이 확인돼 현행 방역 규정인 10일간 격리(호텔 7일, 집 3일)만 준비했는데,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잠결에 받은 전화였지만 정신이 멍했고, 공포가 엄습했다.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는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국 후 호텔에서 매일 측정하는 체온이 정상이었고,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 감염됐다니 황당하기도 했다.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호텔 상주 방역 요원이 건네준 방호복을 입는 사이 질병통제센터, 이송될 격리 병원 등에서 쉴새 없이 전화를 걸어 꼬치꼬치 신원을 확인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갔다.
16일 새벽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응급차에 올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30분을 달려 격리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측은 무증상 감염자 5명을 한 병실에 몰아넣었다.
감염자라 하더라도 정도가 다를 텐데 이렇게 수용하면 교차 감염으로 경증 감염자는 더 위중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당일 오후 1인실로 옮겨졌는데 병실 상태가 황당했다.
벽은 묵은 때로 시커멓고, 사물함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화장실 변기 덮개는 깨져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했으며. 젖은 걸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얇은 파란색 부직포로 감싼 이불도 깨끗할지 의심스러웠다.
샤워기로 물을 뿌려 화장실 바닥을 청소했지만, 전염병에 걸릴 것 같은 찜찜함에 도저히 샤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건물이야 오래되면 노후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청소만 하면 해결될 병실을 이렇게 불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도착 직후 흉부 CT 촬영과 채혈을 한 것 말고는 병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조처는 없었다.
하루 중의약 2팩이 지급됐고, 스스로 2번씩 체온과 혈압을 측정해 공유 애플리케이션에 올리고 매일 PCR 검사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퇴원하기 하루 전에 다녀간 것 말고는 의사의 회진도 없었다.
이럴 바에야 격리 호텔에 묵게 하면서 상태를 살피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햇볕이 들지 않고, 창 너머로 겨우 외부 풍경을 볼 수 있는 병실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지정된 식당과 슈퍼마켓에서만 자비로 음식물과 식수 등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주문한 물품은 방역 요원들이 가져다줬다.
꼬박 열흘의 '독방 감금 생활'을 한 뒤 지난달 25일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며 병원 지정 호텔로 이송돼 또 열흘을 지내며 이틀에 한두 번씩 PCR 검사를 받았다.
그나마 마음 편히 샤워할 수 있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위안거리였지만, 수시로 정전돼 외부와 연락이 끊겨 불편했다.
작년 12월 첫 중국 입국 때 56일(호텔 격리 28일, 자가 격리 28일)의 격리를 했던 터지만,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는 중국에서 '감염자' 신분으로 격리되는 것의 심리적 부담은 비교할 바가 못 됐다.
언제 완치돼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함과 우울감이 엄습했고 불면증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호텔에서 받은 PCR 검사가 네 차례 모두 음성으로 나온 지난 3일 격리 해제 통보를 받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병원 측의 통보를 받은 거주지 관할 서취(구 아래 행정기관) 담당자가 연락해와 대뜸 "최근 격리 해제된 해외 입국자가 감염됐다"며 "일주일 더 호텔에 머무르라"고 요구한 것이다.
병원이 완치 판정해 격리 해제를 결정했는데 과도하게 요구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졌더니 그제야 수그러들었다.
또한, 집주인에게 감염 사실을 알린 뒤 귀가 동의도 받아야 했다. 함께 살지도 않는 집주인이 귀가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또 호텔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집주인은 선선히 귀가를 허용했다.
지난 4일 구급차에 실려 집 앞에 도착하자 인계를 위해 기다리던 서취 담당자는 사뭇 못마땅한 표정과 고압적인 말투로 일주일 자가 격리해야 한다며 준수 사항을 속사포 쏘듯 고지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출입문에는 봉쇄 띠가 부착됐고, 문을 열면 통제센터에서 감지하는 센서도 달렸다.
하루 4번 체온을 재 알려줘야 하고, 매일 두 차례 위치 공유 애플리케이션에 접속, 집을 벗어나지 않은 것도 확인시켜줘야 한다.
선양에 도착해 호텔 투숙한 날부터 따지면 27일 동안 갇혀 지내게 되는 셈이다.
호텔비와 병원비, PCR 검사비를 합쳐 7천여 위안(약 138만 원)이 들었다.
중국인들은 의료보험이 적용돼 병원비 대부분을 환급받지만, 외국인은 고스란히 자비 부담해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 봉쇄된 지역 중국인들이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방역 통제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치는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었다.
p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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