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인니···"참극 속 흔들리는 리더십"

장형임 기자 2022. 11. 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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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장 참사···부패 경찰에 폭발한 국민
100년 넘은 인도 다리 붕괴···정부는 미허가 사실도 몰랐다
이태원 참사에 ···외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서울경제]

사회적 참사는 ‘왜’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 핵심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시민은 최종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정부 차원의 과실은 무엇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한 달여 만에 인도네시아와 한국, 이태원에서 연이어 100명 이상이 숨지는 대형 인재(人災)가 발생하자 외신은 “나라를 뒤흔든 비극은 정부를 시험대에 올렸다”며 각국의 지도자가 정치 리스크를 헤쳐나가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축구경기장 압사’ 부른 경찰 감싸려다 역풍 맞은 조코위

지난달 1일 인도네시아 동자바주 축구장에서 열린 '아레마 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의 경기에서 관중 132명이 압사했다. 홈팀의 패배에 흥분한 일부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자 이를 막으려던 경찰이 최루탄 11발을 발사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출구로 몰렸지만 일부 문이 잠겨있어 참사로 이어졌다.

진상조사단은 FIFA 규정을 어기고 경기장 내 과잉진압을 한 경찰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PSSI)와 홈팀인 아레마 FC 역시 △ 경기장 수용 인원 초과한 티켓 판매 △경기 종료 전 출구 전수 개방 규정 위반 △ 경기장 출구 크기 규정 위반 등을 지적받았다. 이에 현장에서 최루탄 발사를 지시한 페르디 히다야트 말랑 리젠시 경찰서장 등 고위 간부 9명이 해임되고 경찰 인사 3명과 축구 관계자 3명 등 6명은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슬레만에서 시민들이 압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경찰 측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AP연합뉴스

축구장 참사는 이미 잦은 부정부패와 폭력 진압 논란에 휘말려온 인니 경찰을 향한 국민의 분노에 불을 붙인 한편, 경찰과 긴밀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위도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오랜 군부독재 시대를 끝내고 처음으로 선출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군 대신 경찰 권력에 의존했다. 홍콩 아시아타임스는 “위도도 정권 내에서 30명에 달하는 경찰 인사 출신 및 현역이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경찰이 정부 내부의 보안이자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싱크탱크인 아이시스 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마데 수프리아트마 연구원은 “군인 출신이 아닌 조코위가 집권 후 경찰의 힘을 빌려 반정부 인사들을 처벌하고 반대 여론에 재갈을 물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경찰 측이 대통령의 정적을 처리한 대가로 면책을 받아 개혁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던 중 대형 인재가 발생한 것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0월 18일(현지 시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만나 1일 발생한 축구장 참사 사건의 경기장을 철거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기준에 맞게 다시 짓겠다고 밝혔다.AP연합뉴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애런 코넬리 연구원은 위도도 대통령이 참사 발생 초반에 경찰 내부 조사만을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많은 인니 국민들은 경찰과의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위도도 대통령은 황급히 경찰 조사 외 별도 진상조사위원회를 가동해 독립적인 조사를 승인했지만 “그의 지지율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135명 추락한 인도 현수교 붕괴···정치 생명 우려한 모디의 ‘꼬리 자르기’

31일(현지시간) 인도 구자라트주 모르비의 현수교 붕괴 현장에서 국가재난대응군(NDRF)과 경찰, 군인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달 30일에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모르비 지역에서 현수교가 무너져 최대 명절인 디왈리를 맞아 몰린 축제 인파 500여명이 강으로 추락해 어린이를 포함한 약 135명이 사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저녁 지역 관광 명소였던 현수교에 적정 수용 인원(150명)의 3배 이상이 한꺼번에 몰리자 다리 케이블이 끊어지며 수초 만에 다리가 무너졌다. 1880년에 개통된 해당 다리는 7개월 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26일에 재개장했으나 이 과정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인도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하고 이달 1일에는 다리 보수 작업을 진행한 민간 업체 '오레바'의 관계자 9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해당 사고는 보수 업체의 부실 공사, 일부 시민들의 위험한 장난 등과 함께 안전당국의 기반 시설 점검 및 인파 관리 부재로 초래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BBC는 매일 수천 명의 현지인·관광객이 모이는 명소에 어째서 비상사태에 대처할 안전조치가 부족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행정당국과 경찰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 전했다.

1일(현지 시간) 인도 모르비 병원에 방문해 현수교 붕괴 사고 생존자와 대화하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AF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사고 직후 성명을 내고 "참극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과 신속한 구조를 지시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동시에 중앙 정부는 재빨리 해당 지역 정부와 민간 건설업자 측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꼬집었다.

외신은 내년 2월 임기 종료를 앞둔 인도국민당(BJP)이 연말 구자라트 지방선거 직전에 참사가 발생하자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월 선거를 앞두고 모디 총리의 고향이자 BJP가 집권한 구자라트 주가 충격에 휩싸였다”며 야당이 다리 재개장 전 충분한 안전 평가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집권여당 출신 주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레바는 정치적인 진흙탕 싸움의 중심에 서있다"며 건설업체와의 부정 청탁 관계가 의심받자 BJP가 이를 일축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부실 관리와 공공사업 내 만연한 부패로 인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며 인도에서는 정부를 향한 실망과 분노가 짙어지고 있다. FT는 모디 총리가 1일 "구체적이고 공정하며 광범위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붕괴된 다리 잔해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의 구현에 회의적이었다”며 “그들은 전면적인 조사 결과 ‘무엇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전했다.

이태원 참사에 ···"韓 정부 어떤 기관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5일 시청역 인근에서 핼러윈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 이태원에서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발생한 압사 참사 역시 정부가 명확한 책임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전례와 닮은 모습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행정안전부의 브리핑 이후로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이번 사태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경찰은 정치적 시위가 열리면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군중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계획을 세우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토요일 밤에는 그러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경찰이 단 137명 배치되었고 군중 통제가 아닌 성추행·절도·마약 단속 등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이어서 “정부 측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허를 찔렸다’고 말하는 사이, 이미 많은 사람들은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것이 명백해졌음에도 인파 통제에 실패한 것에 책임을 묻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은 재임 몇 달간 불필요하게 정치 자본과 호의를 탕진해왔고, 그것이 현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국가적 상처에 약을 바르고 비극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지도자는 나라를 단결시킬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그의 남은 임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엿새만인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으로 "죄송한 마음"이라고 공개 석상에서 밝힌 상태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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